/신화 종교 관련2013.08.12 05:47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이 적은 괴담kwaidan에는 귀 없는 호이치耳無芳一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귀신과 같은 존재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경문을 적지만 실패해 다치고 마는 형식으로 지금도 많은 미디어매체에서 오마쥬 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실력이 뛰어난 자가 사람이 아닌 존재에게 간택받아 밤이면 밤마다 보이지않는(이경우는 주인공이 보지 못하지만요) 존재의 초대를 받아 연주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키는 어찌 보면 흔한 소재입니다만, 나라 전체를 좌지우지하던 타이라 씨平氏가 몰락해버리고 허수아비에 불과하지만 일단은 어린 왕마저 죽어버렸다는 비극적인 소재와 엮어져 많은 사랑을 받은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00년도 더 된 옛날. 시모노세키下関 해협에 있는 단노우라壇ノ浦에서 패권을 다투던 헤이케平家라고 하는 타이라 씨平氏와 겐지源氏라고 하는 미나모토 일족源族간의 영원한 전쟁의 최후의 전투가 벌어졌다. 이 단노우라에서 헤이케는 완전히 패하고 말아 그 일족의 여자와 아이들 지금은 안토쿠安徳天皇라 불리는 어린 왕도 목숨을 잃었다.[각주:1] 그리고 이 바다와 해안가에는 칠백년간 망령에게 저주받고 있었다. 여기에서 나는 게는 헤이케가니平家蟹라고 해서 특유의 기묘한 게에 대해 다른 책에서 독자분들께 이야기 한적이 있다. 이 게 등딱지는 마치 사람 얼굴과 유사한데 여기엔 헤이케 무사들의 혼령이 씌여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해변 일대에는 이 게말고도 기묘한 이야기가 많다. 깊은 밤이 되면 수천이 되는 도꺠비불이 수면에서 떠올라 파도 위를 떠다닌다고 하는데, 어부들은 이 푸스름한 불을 도깨비불鬼火 내지는 마화魔の火라고 부른다. 바람이 불면 전장소리와 같은 떠들썩한 소리가 바다에서 들려온다.

사실 이전에는 몰락한 헤이케의 망령들이 지금보다 훨씬 사나웠다. 망령은 밤마다 인근을 다니는 배에 달라붙어 배를 가라앉히려고 하거나, 헤엄치는 사람들을 물 속으로 끌고 갔다고 한다.아카마가세키赤間ヶ関에 아미다 사阿彌陀寺가 세워진 연유는 이러한 사자들을 공양코자 한 것으로 절 근처 해변 쪽에는 묘지도 조성되어있다. 그리고 경내에는 물 속에 투신하여 목숨을 잃은 안토쿠를 포함하여 가신 중 중요 인물들의 이름을 기록한 탑도 세워졌다. 이 혼령들의 명복을 빌기위한 법회도 정해진 날 거행되었다. 절과 묘가 세워진 이래로 망령들도 예전만큼 소란을 피우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기묘한 짓을 벌이곤 하였다. 아무래도 망령들이 성불하여 평화를 얻은건 아닌 모양이다.

몇백년도 전에 아카마가세키에 호이치芳一라고 하는 맹인이 살았다. 그는 비파를 타며 노래하는 솜씨가 매우 좋기로 유명하였다. 어릴때부터 이런 기예를 훈련받아 젊을 때는 이미 스승을 능가했다고 한다. 그는 비파법사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겐지와 헤이케 이야기를 노래 할 때는 특히 뛰어나 호이치가 단노우라 전투壇ノ浦の戦い 대목을 부르는 모습은 '귀신이라 할지라도 눈물을 흘린다鬼神すらも涙をとどめ得なかった'고들 하였다.

호이치가 아직 비파법사로 이름을 날리기 전, 매우 가난해 괴로웠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그를 도와줄 사람을 만났다. 아미다 사의 주지는 시가와 음악을 좋아하던 터라 호이치를 가끔씩 절에 불러 비파에 맞춰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를 불러달라고 했다. 주지는 이 소년의 뛰어난 기예에 감탄하여 얼마 뒤에 호이치에게 절에 묵을 것을 권하였다. 절의 방 한 칸을 얻은 호이치는 그 댓가로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저녁마다 주지를 위해 비파를 탔다.

 어느 여름밤, 주지는 단가檀家[각주:2]의 사람이 죽어 그를 위해 명복을 빌고자 동자승을 데리고 외출하였다.  절에는 호이치 혼자 남았다. 밤은 유난히 무더웠고 앞이 보이지 않는 호이치는 툇마루에 앉아 바람을 쐬고 있었다. 마루는 아미다 사 뒤편의 작은 마당을 향해있었따. 호이치는 주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비파를 연습하며 적적함을 달래고 있었다. 한밤중이 지나도 주지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자자니 날이 너무나 무더웠기에 호이치는 여전히 마루에 앉아있었다.

 이윽고 뒷문 쪽에서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마당을 가로질러 마루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툇마루에 앉은 호이치 앞에 마주보며 섰다. 그러나 주지가 아니었다. 갑자기 그 사람은 사무라이가 아랫 것을 부를때와 같이 거리낌 없이 굵은 목소리로 눈먼 이를 불렀다.

"호이치." 호이치는 깜짝 놀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목소리는 엄격한 명령조로 "호이치"라 불렀다.
"네." 눈이 보이지 않는 호이치는 상대의 위헙적인 어조에 겁이 질린채 대답했다. "저는 눈이 안 보입니다. 저를 부르시는 부은 어디의 누구이신지요?"
처음보는 그 자는 조금보다 온화한 말투로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 말하였다.
"나는 이 근처 절에 숙박하고 있는 자로, 전언을 부탁받아 여기로 왔다. 내가 지금 모시고있는 주군은 신분이 매우 높으신 고귀한 분으로, 지금 지체 높은 친구분들 여럿이서 아카마가세키에 체류중이시다. 단노우라 전투의 옛 전장을 보고 싶다 하셔서 오늘 그곳에 납시었다가 그 전투 광경을 노래하는 네 기예가 출중하다는 이야기를 들으시고는 꼭 한 곡 들려달라는 분부이시니라. 사정이 이라하니 비파를 챙겨 나를 따라, 나리를 비롯한 손님들이 기다리고 계시는 저택까지 와주어야겠다."

 당시에는 사무라이의 명령을 가볍게 무시할 수 없었기에 호이치는 신발草履[각주:3] 신은 뒤 비파를 챙겨 낯선 사무라이를 따라 나섰다. 사무라이는 길을 잘 안내해주었지만, 걸음을 놀리는 걸 재촉하였다. 호이치를 이끄는 그 손은 마치 강철과 같고 큰 보폭으로 걸을때마다 철이 부딪히는 소리가 나, 호이치는 사무라이가 갑옷과 투구로 무장 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틀림없이 어딘가 지체 높은 분의 호위무사이려나, 호이치는 처음 느꼈던 놀란 감정 대신 이거 참 우연찮게 행운을 얻었구나 라며 남몰래 기뻐하기까지 했다. 사무라이가 신분이 매우 높으신 고귀한 분이라고 한 이상 자기 노래를 듣고 싶어하는 나리가 어딘가 높은 다이묘大名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윽고 사무라이가 멈춰섰다. 호이치는 거대한 문앞에 도착한 것을 깨달았다. 야마다 사의 대문을 제하곤 이렇게 큰 문이 있었다고는 생각치도 못한 호이치는 이를 신기해했다. "문을 열라!"라고 사무라이가 외치자 빗장을 여는 소리가 나더니 두 사람은 문을을 지나 넓은 정원을 다시금 지나 다른 입구 앞에 섰다. 거기서 이 무사가 크게 "누군가 안에 없는가! 호이치를 데려왔다."고 외쳤다. 스산스런 발걸음, 장지문을 여는 소리, 덧문을 여는 소리 여자들의 소근거리는 소리등이 들려왔다. 여자들의 말소리를 듣고는 호이치는 어느 고귀한 집안을 모시는 이들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어디로 끌려왔는지는 도통 알 길이 없었다.

 그걸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돌계단을 몇 개 오른 후 마지막 단에서 신발을 벗었다. 그 다음 어느 여자의 손에 이끌려 긴 복도를 따라 기둥이 있는 모퉁이를 몇 번이나 돌았는지 알지 못할정도로 돌고는 놀랄만큼 넓은 다다미 방을 몇칸이나 지나 매우 큰 방 가장 안쪽으로 안내되었다. 여기엔 많은 분들이 계시구나 라고 호이치는 생각하였다. 옷깃이 스치는 소리가 마치 숲의 나무 잎사귀가 스치는 듯이 들렸다. 또 많은 사람들이 낮게 속삭이는 소리를 들어보니 궁중 귀족들의 말투였따.

 호이치는 마음 편히 있으라는 말을 들었다. 그를 위한 방석도 준비되어 있었다. 그 위에 앉아 비파의 상태를 확인해 보려니 여자들을 관리하는 시녀장인 듯한 노파의 목소리가 호이치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부터 비파에 맞추어 헤이케모노가타리를 불러주시었으면 합니다." 전부 부르는 건 몇날이 걸리기에 호이치는 마음을 다잡고 물었다.
"이야기 전부는 힘들지만 부분이라면 가능합니다. 영주님께서는 어느 권을 불러드리면 좋으시겠습니까?"
시녀장이 답하길 "단노우라 전투 그 편이 가장 정취가 깊다고 알고 있으니 그 대목을 불러주십시오."

 호이치는 소리를 드높여 괴로운 해전를 노래하기 시작했다. 비파는 어쩔땐 노를 젓는 양, 배가 나아가는 소리를 내거나 휭하는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 무사의 우렁찬 외침과 발구르는 소리, 투구에 칼날이 우는 소리 , 무사가 바다 속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따. 그 연주 중간중간에 호이치 좌우에서 감동하여 칭찬하느 소리가 들려왔다. "이 얼마나 기교로운 비파연주자인가!" "우리 고장서 이와 같은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소!" "일본을 전체에서도 호이치와 같은 이야기꾼은 둘도 없을 것이오."
 
용기가 난 호이치는 점점 좋게 연주하고 노래하였다. 좌중는 놀라고 감탄하여 숲처럼 침묵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아름답지만 무력한 자들의 운명. 여자들의 애초로운 최후와 팔에 어린 천황을 안은 채 바다에 뛰어든 니이노아마二位の尼[각주:4]의 투신을 노래하는 대목에 이르렀을때 듣던 이들은 일제히 비통하여 떨리는 탄식을 내지르고는 모두 미친듯이 크게 곡하고 슬퍼하였다. 오랫동안 오열과 흐느낌이 계속되다가 한탄하는 소리가 사라지고 침묵이 계속되자 시녀장으로 추측했던 노파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대가 비파의 명인인것을 알고 노래하는 것에 견줄 자가 없을 정도로 능하다고 들었으나 그대가 오늘밤 들려준 것것처럼 기교가 뛰어날 것이라곤 생각치도 못했습니다. 주군께서는 그대에게 마땅한 사례를 내리고자 합니다만, 오늘부터 6일간 매일 밤마다 연주를 듣고 싶으시다고 합니다. 내일 밤도 오늘 그대를 안내한 무사가 데리러 갈 겁니다. 그리고 하나 더 말씀드려야만 하는 게 있습니다. 주군께서 아카마가세키에 체류하시는 동안에는 그대가 이 곳을 방문했따는 사실을 어느누구에게도 올리면 안됩니다. 지체 높으신 분의 미행인 탓에 이 일에 관해 일설 발설해서는 안됩니다. 이제 절로 돌아가셔도 됩니다."

 호이치가 감사의 인사를 충분히 올린 뒤 여자는 호이치를 손으로 붙잡고 저택 현관까지 안내하였다. 거기에는 조금 전 자신을 데리고 온 무사가 기다리고 있어, 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무사는 절 뒷편 툇마루까지 호이치를 데려다 준 다음 돌아갔다.

호이치가 돌아왔을 무렵은 벌써 동이 틀 때였지만, 아무도 호이치가 절을 비웠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였다. 주지는 밤 늦게야 돌아왔기에, 호이치가 자고 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낮에 호이치는 조금 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묘한 일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밤이 되자 무사가 다시 호이치를 데리러 와 높으신 분들의 모임에 데려갔다. 호이치는 다시 연주와 노래를 하였고 전날 밤과 같이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이 두번째 외출은 호이치가 절을 비웠던 것이 우연히 들통나 버렸다. 그리고 아침에 돌아온 호이치는 주지에게 불려나갔다.

주지는 부드럽게 타이르듯이 말하였다.
"호이치 자네 걱정하느라 안절부절 못했다네, 눈도 안보이는 양반이 혼자서 이렇게 늦게까지 외출한다는건 위험하다고. 어째서 우리들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나갔나? 나간다고 한다면 하인이라도 딸려서 보냈을텐데, 대체 자네 어디를 갔었나?"
호이치는 얼버무리듯이
"주지스님 용서해주십시오. 조금 사사로운 볼일이 있었습니다. 다른 시간에는 하기 힘든 일이었기에 그리 되었습니다."

주지는 호이치가 얼버무리는 것에 기분이 상했다기보다는 놀랐다. 그게 꽤나 부자연스러웠던 데다가 영 좋지 못한 일인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주지는 이 눈 먼 소년이 악마에게 씌이거나 혹은 놀아난 것이 아닌가 싶어 걱정되었다. 그래서, 그이상은 캐묻지 않았지만 슬쩍 절의 일꾼들에게 일러두었다. 호이치의 행동을 주시하고 또 밤이 되어 절을 빠져나가면 뒤를 밟도록 전하였다.

그날 밤 호이치가 절을 빠져나가는 것을 발견한 일꾼들은 얼른 초롱불을 들고 뒤를 밟았다. 그날 밤은 비가 내려 유난히 어두웠다. 절 사람들이 큰 길로 나오기도 전에 호이치의 모습은 사라진양 보이지 않았다. 호이치가 아무리 빨리 걸었다고 쳐도 눈도 먼데다가 길도 영 좋지 못해서 꽤나 기묘한 일이었다. 일꾼들이 마을을 둘러보고 호이치가 갈 법한 집을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호이치를 찾아내지 못했다. 끝으로 해변에서 절로 돌아오는 도중 아미다 사 묘지에서 한창 비파를 튕기는 소리가 들려와 모두 크게 놀랐다. 여기는 어둑한 밤만 되면 두세개씩 도깨비불이 떠돌아다니곤 했는데, 그 외에는 아무런 빛이 없어 매우 캄캄하였다. 하지만, 일꾼들은 얼른 묘지로 달려갔다.

그리고 빗속에서 홀로 안토쿠 천황 무덤 앞에 앉아 비파를 타며 단노우라 전투 대목을 큰 소리로 노래하는 호이치와 그 등뒤와 주변 그리고 모든 무덤 위에 죽은 자들의 도깨비불이 촛불이 타는 듯이 타오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나 많은 도꺠비불이 사람 눈에 띈 적은 없었다.
"호이치씨! 호이치씨!"라며 일꾼들이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뭔가에게 홀린거에요!…… 호이치씨!"

 하지만 그 맹인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 했다. 온힘을 다해 호이치는 비파를 쟁쟁 비파를 튕기며 맹렬히 단노우라 전투를 다룬 노래를 불렀다. 사내들은  호이치 몸을 붙들고 그의 귀에 소리쳤다. "호이치씨! 호이치씨! 얼른 우리와 함께 절로 돌아갑시다!" 호이치는 남정네들을 꾸중하듯 대답했다.
"이런 고귀한 분들 앞에서 이렇게 저를 방해하다니, 이분들께 용서받지 못할 겁니다."
이 말을 들은 남정네들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호이치가 뭔가에 씌인것이 틀림 없다고 여겨 일꾼들은 그를 붙잡고 억지로 절로 끌고 갔다. 그리고 주지의 명령으로 호이치는 젖은 옷을 갈아입고 음식을 억지로 입에 대었다. 그리고 주지는 호이치의 놀라 자빠질만한 거동에 대해 자초지종을 알려달라고 했다.

호이치는 오랫동안 말할지 망설였다가, 자신의 행동이 훌륭한 주지를 걱정시키고 화냈다는 것을 깨닫고는 더이상 숨기려던 마음을 철회하고는 무사가 찾아온 이래로 있었던 일을 상세히 말하였다. 그러자 주지가 말하길

"호이치. 불쌍한 남자로고. 자네는 아주 위험한 상황이라네! 처음부터 나에게 이런 일을 솔직하게 나에게 털어놓지 않은게 잘못이었어! 자네의 기교가 정말 기묘할 정도로 훌륭한 것이 이 사단을 냈어. 자네는 결코 사람의 집에 초대받은 것이 아니라, 묘지 중에서도 헤이케의 묘지에 밤을 지내고 온거라고, 아직도 어리둥절하겠지만 오늘 일꾼들이 빗속에서 자네가 앉아있었던 것을 본건 안토쿠 천황의 넋을 비는 묘지의 앞이었어. 자네가 믿고있었던 것은 전부 환영이라네. 망자가 자네를 초대해하고 갔다온 이상 자네는 그네들 손아귀에 있어. 이리 되었으니 만일 또 한번 말하는대로 한다면 자네는 그들에게 갈기갈기 찢겨나갈 게 트림없어. 어쨌든 늦든 빠르든 자네는 목숨을 잃었을게야 그런데 오늘밤도 난 자네랑 있을 수가 없네 법회에 불려나가게 되서 말이야. 허나 가기전에 자네 몸에 경문을 써서 자네 몸을 지킬 수 있도록 해두지."

 해가 지기 전 주지와 동자승은 호이치를 발가벗기고는 붓으로 그의 가슴과 등, 머리와 얼굴, 턱, 손과 발 전신에 반야심경이라고 하는 경문을 옮겨적었다. 그것을 끝낸 주지는 호이치에게 이렇게 말하였따.
"오늘 밤 내가 나가면 자네는 툇마루에 앉아 가만히 기다리도록 하게. 누군가 자네 이름을 부르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대답을 해서는 안되네. 움직여서도 안되고, 아무 말도 말고 잠자코 명상하듯 앉아있게나 만약 움직이거나 조금이라도 소리를 낸다면 자네는 갈기갈기 찢겨나갈 걸세, 당황해서 도움을 청하거나 해서도 결코 안되네, 도움을 청해도 도와줄 수 없기 때문이지. 내가 말하는대로 한다면 위험할 것은 딱히 없을걸세 더이상 그런 무서운 일도 일어나지 않을거야."

 날이 저물자 주지와 동자승은 절을 나섰다. 호이치는 주지가 시킨대로 툇마루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비파를 마루 위에 올려두고는 입선하듯 자세를 잡고 조용히 있었다. 기침소리나 숨쉬는 소리도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몇시간이고 앉아있었다.
그러자 길에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문을 지나 마당을 가로질러 툇마루 가까이 다가오더니 호이치 정면에서 멈췄다. "호이치!"라고 박력있는 소리가 호이치를 불렀다. 하지만 눈 앞이 깜깜한 호이치는 숨을 죽이고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호이치!" 다시금 두려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새번째는 거칠게 "호이치"라고 소리질렀다.

호이치는 돌처럼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자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대답이 없군! 이것 참 곤란한걸 이 놈이 어디 있는지 찾아봐야겠어." 툇마루에 오르는 무거운 발소리가 났다. 발길은 천천히 호이치 곁에 다가와 멈추었다. 그리고 호이치가 전신의 심장고동 소리를 들으며 와들와들 떨며 오랜 시간 침묵이 계속되었다.

마침내 거친 목소리가 호이치 곁에서 소리를 내었다. "여기 비파가 있군. 하지만 비파법사는 그저 귀 두개만 보일 뿐이야! 과연 이래서는 대답할 수가 없지. 대답하고 싶어도 입이 없어서 못하니까. 두 귀외로는 비파법사 몸은 어디에도 없어…. 좋아 주군께는 이 귀를 가져가도록 하자. 가능한 한 명령에 따랐다는 증거로 말이지."

 그 순간 호이치는 양쪽 귀에 강철같은 손가락이 귀를 쥐어 뜯어가는 것을 느꼈다! 고통은 끔찍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지경이지만 호이치는 신음도 내지 않았따. 묵직한 발소리가 툇마루를 따라 멀어져 마당에 가더니 더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눈 앞이 보이지 않는 호이치는 머리 양 옆에서 진하고 뜨거운 무언가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느꼈지만 까딱할 기력조차 없었다.

 해가 뜨기 전에 주지가 돌아왔다. 절 뒤편으로 서둘러 간 주지는 뭔가 끈적끈적한 것을 밟고 넘어졌다. 그리고 등골이 오싹해져 비명을 질렀다. 초롱불로 끈적끈적한 것이 피였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이치는 명상에 빠진 자세 그대로 거기에 앉아 있었다. 상처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며

"가여운 호이치!" 주지는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호이치 자네 다치지 않았는가…" 주지의 목소리에 눈이 보이지 않는 호이치는 안심하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울면서 밤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했다. "불쌍하게도 호이치!" 주지는 외쳤다. "미안하네 호이치! 내 잘못이야! 모든게 내 불찰이야! 자네 온몸에 경문을 섰다고 생각했는데 귀에 쓰는걸 잊어버렸어! 귀는 동자승에게 맡겼는데 제대로 썼는지 확인을 못했어. 미안하네! 다 내잘못이야. 허나 이젠 손 쓸 도리가 없네 가능한 상처를 치료하는 수 밖에… 호이치, 자 기운을 내게! 그래도 이제 위험한 일을 당할 일은 이걸로 사라졌네. 두번 다시는 그런 망자에게 불려나가지 않을터니 말일세."

훌륭한 의사 덕분에 호이치의 상처는 금세 나았다. 호이치가 당한 기묘한 사건은 사람들의 입을 타고 널리 퍼졌고 그는 매우 유명해졌다. 고귀하고 지체 높은 분들이 몇 사람이나 아카마가세키에 찾아왔다. 그리고 호이치는 많은 액수를 보답으로 받아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그 사건이 있은 이후로 그 남자는 귀없는 호이치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는 것이다.


비파법사琵琶法師는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부터 보이기 시작한 일종의 예능직입니다.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때에는 비파를 튕기며 경문을 읊거나 불교에 관한 이야기를 읊었지만, 종교적 색채가 옅어지면서 각종 모노가타리物語를 노래하게 되었습니다. 비파법사는 침구鍼灸[각주:5]나 안마按摩와 같이 맹인들이 먹고살고자 하던 직업이었습니다.


귀없는 호이치의 호이치 모델로 14세기 당시 천황가에 자주 연주를 선보였으며 비파 외로도 침구와 안마의 달인이었던 아카시 카쿠이치明石覚一가 아닌가 하는 설도 있습니다.


헤이케가니(헤이케 게)平家蟹는 보시는 바와 같이 얼굴이 마치 성난 남성 혹은 귀신의 얼굴과 닮아 단노우라 전투때 죽은 헤이케의 남자들이 변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에도시대 우키요에 화가浮世絵師인 우타가와 쿠니요시歌川国芳도 이 전설에서 따온 그림이 있습니다. 


1952년 줄리안 헉슬리 경Sir Julian Sorell Huxley은 라이프 지에 인위선택설로 헤이케가니가 왜 사람의 얼굴을 닮은 등껍질을 가졌는가에 대한 글을 적은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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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를 단노우라의 전투壇ノ浦の戦い라고 합니다. 흔히 겐페이합전 내지는 겐페이 전쟁源平合戦등으로 불리는 지쇼우 쥬에이의 난治承・寿永の乱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전투로 천하를 호령했던 타이라 씨가 패하여 타이라 씨와 그들이 옹립한 어린 안토쿠安徳天皇가 바다에 빠져 목숨을 잃었습니다. [본문으로]
  2. 절에 시주하는 사람 [본문으로]
  3. 조우리ゾウリ. 조리는 풀(짚)을 엮어 만든 일본 전통신발 중 하나로, 지금은 전통복장에 맞춰 신습니다. 반드시 짚을 사용하지는 않고 비닐 소재를 사용하여 대량생산한 것이 많습니다. [본문으로]
  4. 타이라노 토키코平時子. 타이라 정권을 수립해 천하를 쥐락펴락하던 타이라노 키요모리平清盛의 정실 [본문으로]
  5. 침과 뜸 [본문으로]
Posted by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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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근데 귀가 없어졌는데 어떻게 듣고 계속 악사 활동을 하죠?

    2015.07.19 02:09 [ ADDR : EDIT/ DEL : REPLY ]
    • 귀가 멀기 이전부터 훌륭한 악사였기에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비유가 마땅하진 않지만 베토벤도 귀가 멀었지만, 작곡과 지휘를 능히 해냈죠

      2015.07.22 23:20 신고 [ ADDR : EDIT/ DE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