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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죽고랑斑竹姑娘은 1954년 사천성 서북부의 아바 티베트 강족 자치주에서 채록된 것으로 여겨지는 이야기를 상하이에서 출판된 "금옥봉황金玉鳳凰"이라는 책에 실린 이야기입니다. 70년대 일본과 중국의 교류가 개방되면서 대나무에서 자라난 여자아이, 여자아이가 내는 다섯가지 난제로 인해서 타케토리모노가타리의 원형 혹은 같은 원형을 갖는 이야기가 아닌가?라는 주제로 주목을 받던 이야기입니다.
반죽고랑의 대략적인 이야기
금사강 남쪽에 늙은 어머니와 함께 사는 랑파朗巴라는 소년이 있었다. 랑파 모자가 사는 마을은 인근의 대나무 숲을 가꾸고 이 대나무를 영주土司에게 파는 것을 업으로 삼았다. 이 마을의 영주는 대나무를 헐값에 사들여 금사강 하류 지역에 비싸게 팔았다. 떄문에 랑파 모자는 빈곤하게 살았고 모자는 이 생활에 너무나 힘들어 대나무 숲에서 울고 만다.
이 모자의 눈물이 닿은 대나무는 아름다운 얼룩斑을 띄는 한편, 더이상 다른 나무들처럼 높게 자라지 않게 되었다. 랑파 모자는 이 대나무를 지키고자 했다. 하루는 영주 부하들이 대나무를 수거하러 오자 랑파는 얼룩 대나무를 강에 던져두었다. 영주 부하들이 돌아가자 랑파는 이 대나무를 회수하는데 대나무 안에서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나무를 쪼개보니 안에는 작은 여자아이가 들어 있었다.
랑파가 대나무에서 꺼낸 여자아이는 바람을 맞자 점차 커져, 랑파와 비슷한 나이대가 되었다. 여자아이는 랑파 모자와 함께 살게 되었다. 대나무 소녀에 대한 소문은 널리 퍼져나가고 대나무 소녀를 아내로 맞이하려는 이들이 나타났다.
영주의 아들, 상인의 아들, 관리의 아들, 오만한 도련님, 허풍쟁이 도련님은 대나무 소녀에게 구혼했지만, 대나무 소녀는 그들의 구혼에 다음과 같은 난제를 제시했다.
영주의 아들에게는 다른 나라 군사들이 지키고 있는, 아무리 쳐도 부수어지지 않는 황금으로된 종을,
상인의 아들에게는 때려도 부수어지지 않는 옥으로 된 나무를,
관리의 아들에게는 불에 타지 않는 불쥐의 가죽옷을,
오만한 도련님에게는 제비가 낳는다는 황금 알을,
허풍쟁이 도련님에게는 바다 용의 이마에 달린 진주를 요구했다.
영주의 아들은 산에 있는 사당에 걸려있는 청동으로 된 종을 훔쳐와 도금을 하고는 보물을 가져왔다 내보이지만, 대나무 소녀가 송곳으로 찍어보니 금박이 벗겨져 망신을 당한다.
상인의 아들은 한족의 장인에게 옥으로 된 나무를 만들라고 하고는 그것을 내보이지만, 대금을 받지 못한 장인들이 쫓아왔기 때문에 들통나버린다.
관리의 아들은 여기저기서 그럴듯한 가죽옷을 사와 내보이지만, 불에 타버리고 만다.
오만한 도련님은 사람을 총동원해 제비 둥지를 뒤지며 난리를 피운다. 이를 보다 못한 아무개가 산에 있는 높은 건물에 둥지를 튼 제비는 황금알을 낳는다 거짓말을 한다. 이 거짓말을 듣고 직접 둥지에서 황금알을 꺼내려던 도련님은 줄을 두른 나무통에 올라서 둥지를 뒤지려다가 제비에게 공격을 받다가 통을 걷어쳐 추락해 죽고만다.
허풍쟁이 도련님은 돈을 주고 사람을 보내 찾게 하지만, 모두 도망쳐버리고 만다. 그리고 주변에는 진주를 가져왔다고 떠벌리고 다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다로 나가지만 태풍을 만나 먼 바다의 외딴 섬에 갖히게 된다.
이렇게 대나무 소녀에게 구혼하던 이들이 죽거나, 단념하게 되면서 랑파와 대나무 소녀는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확실히 타케토리모노가타리와 매우 유사한 이야기를 갖고 있는 한편, 불교적 요소가 적은 점. 그리고 유사한 이야기가 베트남에도 있는 점으로 인하여, 타케토리모노가타리와 반죽고랑은 "날개옷 설화+구혼담의 형식을 갖는 어떠한 원형"을 바탕으로 진행되거나 반죽고랑에 불교+일본 문화가 가미된 작품이 아닌가? 라는 의견이 대두되게 됩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사유로 원형으로 보기 어렵고 되려, 타케토리모노가타리의 번안 작품으로 여겨집니다.
주요 비판점. 타케토리모노가타리가 명확하게 전래된 이후 시기인, 1954년 이전까지 유사한 이야기가 인근 지방에서 채록되거나 기록되지 않았다
-> 중국의 청말-개화기 무렵 일본문학이 전래되기도 했고, 1927년 중국의 최초 아동문학 전문 간행지 「아동세계」에서 타케토리모노가타리를 번안해 옮긴 「죽공주竹公主」라는 작품이 1927년 1월부터 8월까지 연재되었는데 반죽고랑은 이 작품의 영향이 엿보인다는 점입니다.
죽공주는 타케토리모노가타리에서 어느정도 가필이 이루어진 작품으로 타케토리모노가타리에서는 없는 월궁. 달에서의 이야기가 길게 적혀있는 한편, 난제의 순서가 반죽고랑 같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타케토리모노가타리는 부처님의 바리때->봉래의 옥 가지->불쥐의 가죽옷->용의 턱 오색 구슬->제비의 자안패 순인데,
죽공주와 반죽고랑은 바리때(죽공주)/종->옥가지->불쥐의 가죽옷->제비의 자안패(죽공주)/황금알->용의 진주/해룡의 이마 진주 라는 점이죠.
또한, 서천성의 서북쪽에서 채록되었다고 하나 다른 티베트 지역 및 강족의 민담과는 거리감이 있는 한편, 유사한 이야기조차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 또한 반죽고랑이 타케토리모노가타리의 원형이 아니라 되려 번안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외로
1. 앞서 영주로 옮긴 土司는 원나라 시대부터 도입된, 청나라까지 지속된 지방 이민족의 세습 관직명.
-> 물론 채록하면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혹은 채록자가 임의로 변경했을 수도 있다. 구전되면서 변경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반고죽랑을 정말로 "원형"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2. 츠부라야 에이지円谷英二의 1935년 영화 카구야히메かぐや姫의 영향이 보인다

이 영화에서는 카구야 히메가 달로 돌아가지 않고, 자신을 길러준 집안의 남자 아이와 이어지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3. 채록된 지역과 2차 세개대전 당시의 일본군 주둔지가 겹친다
등 여러 사유로 인하여 현재 일본에서는 반죽고랑을 타케토리모노가타리의 원형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는 타케토리모노가타리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는 한편, 같은 신화소를 채용한 설화로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 같은 신화소를 차용한 것으로 보이는 베트남의 "대나무 속 작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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