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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가일몽 南柯一夢의 유래 남가태수전 南柯太守傳
    모티프/유래 역사 관련 2015. 8. 18. 23:19

    남가일몽南柯一夢은 8세기 당나라 때 소설가인 이공좌李公佐가 남긴 이야기인 남가태수전南柯太守傳에서 유래한 말로 인생과 부귀영화의 덧없음을 빗댄 말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심기제沈旣濟라는 소설가가 쓴 소설 침중기枕中記에 나온 이야기.

    한단邯鄲[각주:1]의 노생盧生[각주:2]이 도사 여옹呂翁[각주:3]이 내보인 양쪽으로 구멍 뚫린 청자 베개를 빌려 누워 잠이 들게 되는데 꿈에 베개가 점점 커져 구멍속으로 들어가서 그집 여식과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하고 승진하다 역적으로 몰려 유배되었다가 오해가 풀려 재상이 되었다가 80세로 장수하고 죽는 꿈을 꾸었지만 이 일생이 메조밥의 뜸을 다 들이지도 못한 매우 짧은 시간동안 꿈에 불과해 부귀영화와 이에대한 집착이 허망하다는 깨달음얻었다는 내용의 이야기에서 유래한 사자성어이자 뜻이 똑같은  한단지몽邯鄲之夢이 있으며, 이 남가일몽과 한단지몽은 송나라 때 쓰인 글에서 유래한 말 일장춘몽一場春夢과 동의어입니다.




    다음은 남가태수전입니다.

     동평東平에 순우분淳于棼 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오초 지방에 이름난 협객으로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며 대범해 사소한 일에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는 크게 재산을 쌓아, 호객을 데리고 있었다. 일찍이 그 무예가 인정되어, 회남군淮南軍 부장으로 부임한 적이 있으나, 술을 마시고 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노여움을 사 쫓겨나게 되어 달리 하는 일 없이 술을 마시고 제멋대로 굴었다. 


     그의 집은 광릉군廣陵郡에서 동쪽으로 10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그의 집 남쪽에는 크고 오래된 홰나무槐 한 그루가 있었는데 나뭇가지와 줄기가 무성하고, 서늘한 그늘을 수 평이나 만들었다. 순우분은 날마다 호객들을 모아 그 아래서 술을 마셨다. 


     정원貞元 7년[각주:4] 9월에 그는 술이 너무 마셔 병이 들고 말았다. 그 때에 두 친구가 같은 술자리에 있다가 그를 부축해 집에 데려다주고 집 동쪽 행랑에 눕혀 놓았다. 

    두 친구가 말하길 

    "이봐 우분이 좀 자두게. 우리는 말에게 여물을 주고 발을 씻다가 자네가 좀 나아지면 가겠네."

    우분은 머리에 두른 두건을 벗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정신이 혼미한 게 마치 꿈 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자줏빛 옷을 입은 두 사자가 보였는데, 그에게 무릎꿇으며 절하며 말하였다. 

    "괴안국 왕槐安國께서 저희들을 그대에게 보내어 모셔오라 명하셨습니다." 


    우분은 자신도 모르게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갖추어 그 두사자를 따라 대문까지 나아갔다. 대문에는 말 네필이 끄는 푸른 칠을 한 작은 수레가 있었다. 이 끌고 있었다. 좌우에는 시중을 드는 사람이 7~8명 이 있어, 그를 부축해 수레에 태웠다. 수레는 대문을 빠져나와 오래묵은 홰나무 밑의 굴로 향하였다.사자는 수레를 그 굴 속으로 빨리 몰았다. 우분은 속으로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고 생각은 했지만, 감히 물어보지 못했다.


     그러자 돌연히 산과 흐르는 강의 풍경이 펼쳐지면서 초목이 무성하고 도로가 닦인게 보였는데, 이는 인간 세상과는 심히 다른 것이었다. 계속해서 수십 리를 나아가니 높은 성곽과 성곽을 둘러싼 담이 보이고 길에는 수레와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수레 좌우에 있던 자들이 주변 사람을 물리는 소리는 심히 엄하였고, 행인들도 다투듯 가면서 수레 좌우로 길을 틔어주었다. 큰 성에 들어가는데 붉은 문이 달린 누각이 있었고, 누각 위에는 금색 글씨로 현판에 씌여있길 대괴안국大槐安國이라 하였다.


     문지기들이 줄줄이 나와 인사하기 분주한 가운데, 얼마지 않아 말을 탄 이가 나와 말하길 

    "대왕께서는 부마駙馬가 먼 길을 오셨으니 잠시 동화관에서 쉬시라 하십니다."라고 전갈을 전하고는 그를 안내했다. 곧 크게 열린 대문이 나타났고, 우분은 수레에서 내려 들어갔다. 그 안은 다채롭게 칠해진 난간과 기둥과 건물이 있었는데 꽃과 진귀한 과실이 맺힌 나무가 나란히 정원에 심어져 있었고, 뜰 위에는 맛있는 요리가 차려지고 발[각주:5]과 휘장이 쳐져 이 쳐진 책상과 방석이 있어 우분은 대단히 기뻐하였다. 

    또, 누군가 말하기를 

    "우승상께서 오십니다." 

    우분은 계단 아래로 내려가 공손히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자 자줏빛 입을 입고 상아로 만든 홀을 들고 있는 사람이 다가와 손님과 주인간 인사를 나누는데 지극히 공손하였다. 우승상이 우분에게 말하길 

    "저희 왕께서는 저희 나라가 이리도 먼 벽지에 있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하시고 군자를 맞이하여, 사위가 되어달라 부탁하셨습니다."

    우분 말하길 

    "저는 비천한 몸인데 어찌 감히 그러한 걸 바라겠습니까?"

    우승상은 우분을 어느 곳으로 데려갔다. 한 100보 쯤 걸어가 붉은 대문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창이나 도끼 따위가 좌우로 나란히 세워져 있고, 수백명의 군사들이 길 가로 비켜 서있었다. 우분에게는 평생 술친구였던 주변周弁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도 그 무리에 있었다. 우분은 내심 반가웠지만 감히 앞으로 가서 인사를 하진 못했다. 


    우승상이 그를 넓은 궁전으로 안내하였는데, 그 호위가 엄숙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지극히 존귀하신 분이 있는 곳 같았다. 그곳에는 크고도 대단히 장엄한 분이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몸에는 흰 비단옷을 걸치고 머리에는 붉은 화관을 쓰고 있었다. 우분은 겁이나 떨며, 감히 쳐다 보지 못하였다. 이때 좌우에 있던 시종들이 우분이 왕에게 절을 올리게 하였다. 


    왕이 말했다.

    "이전에 그대 부친이 보낸 편지를 받았는데, 이 나라를 작은 나라라 꺼리지 않으시고는 그대와 둘째 딸인 요방을 결혼 시키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분은 고개를 숙이고 엎드리고만 있을뿐 감히 말을 하지 못하였다. 

    왕이 말하길 

    "잠시간 빈관에서 쉬시다가 혼례를 올리도록 합시다."

    얼마지 않아 우승상이 우분과 함께 관사로 돌아왔다. 


    우분은 속으로 생각하기를 아버지께사 변방에서 장수로 계시다가 적에게 죽었는지 사로잡혔는지 생사도 알지 못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혹 아버지가 북방 오랑캐들과 하친코자 이러한 일을 꾸미신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마음이 심히 혼란스러웠기에 그 까닭을 알수 없었다. 


     그날 저녁, 양과 기러기과 폐백 춤과 노래 맛있는 요리와 색색 등불 등 혼례에 필요한 예물들이 수레에 실려 갖추지 않은 게 없었다. 수많은 여인들이 있었는데 화양고華陽姑라 불리는 여자, 청계고青溪姑라 불리는 여자, 상선자上仙子라 불리는 여자, 하선자下仙子라 불리는 여자와 같은 여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모두 수십명의 시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에는 비취와 봉황이 장식된 관을 쓰고 몸에는 황금색 비단 옷을 입고 오색 무늬 청강석이나 금비녀를 꽂아 눈이 부시어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즐겁게 놀이를 하면서 우분이 있는 건물을 드나들었고, 서로 다투듯 신랑인 우분을 희롱하였다. 그녀들의 자태가 요염하고 어여쁘고 말솜씨 또한 교묘하면서 아리따워 우분은 이를 어찌 대응 할 수 없었다.

    그때에 다른 여자가 말하기를

    "작년 상사일에 저는 영지부인靈芝夫人을 따라, 선지사禪智寺를 지나 천죽원天竹院에서 우연히 바라문婆羅門 춤을 추는걸 구경했었습니다. 저는 다른 여자들과 함께 북쪽 창가 석상에 앉아있었는데, 그때 군자께서는 아직 앳되셨으며 말에서 내려 춤을 구경하셨지요.

    그러다가 군자께서 저희들 있는 곳에 와 살갑게 말을 거시고는 농담도 하셨습니다.


    그때에 저와 경영瓊英은 붉은 색 수건을 매듭지어 대나무 가지에 걸어놓았는데 군자께서는 그 기억이 나지 않으십니까? 또, 7월 16일에는 효감사孝感寺에서 상진자上真子를 모시고 계헌법사契玄法師의 관음경觀音經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저는 그 강의에 봉황새 무늬가 있는 금비녀金鳳釵 두개를 내었고, 상진자는 물소 뿔로 만든 합水犀合을 내셨습니다. 그때 군자께서도 그 강연하는 자리에 계시어, 법사에게 그 비녀와 합을 보시길 청하시더니, 두세번 감탄하시고는 저희들을 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사람이나 물건이 모두 이세상 것이 아니로군'라고 하셨고, 제 이름을 물으시거나 제 사는 마을을 물어보셨지만 제가 답하지 않자 마음을 차마 버리지 못하시고는 한눈 팔지 않고 저를 계속 보셨는데 그대는 어찌 그걸 잊으셨단 말이십니까?"


    우분이 말하길

    "나는 아직도 이 마음 속에 그것을 간직하고 있는데 어찌 하루라고 잊겠는가?"

    여자들이 말하길

    "오늘 군자님의 인척이 될 줄 몰랐습니다."


     그러자 다른 세 사람이 관대를 심히 훌륭하게 차리고 우분 앞에 와 절을 하고 말하길

    "저희는 우분님을 따르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 세 사람중 한명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우분이 말하길

    "그대는 풍익馮翊의 전자화田子華가 아닌가?"

    전자화 답하길

    "그렇습니다."

    우분은 전자화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붙잡고 한참동안 지난 이야기를 하였다.

    우분 말하길

    "그런데 그대는 어찌 이곳에 오게 되었는가?"

    전자화 답하길

    "저는 떠돌다가 우승상 무성후 단공의 인정을 받아 몸을 의탁하게 되었습니다."

    우분이 다시 묻기를

    "그런데 주변이 여기에 있는걸 알고 있는가?"

    전자화 말하길

    "주생께서는 귀하신 분입니다. 직책이 사예司隸로 그 권세가 심히 대단합니다. 저는 몇번이나 그의 비호를 받았습니다."

    즐겁게 담소를 나누다 얼마지 않아 전갈이 들려왔다.

    "부마는 들어오시오."


     세 사람은 칼과 패옥과 모자와 의복을 가져와 우분에게 입히었다.

    전자화 말하길

    "오늘 성례에 참가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아무쪼록 저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선녀 수십명이 기이한 음악을 연주하는데, 그 음향이 어여쁘고 청아하며 곡조가 구슬픈 것이 속세에서는 들어본적 없는 것이었다. 촛불을 들고 안내하는 이 또한 수십이 되었고, 좌우로 금과 비취로 장식된 울타리가 있어 영롱한 색채가 끊이지 않았다. 우분은 수레 안에서 단정히 앉아있었지만, 마음만은 황홀한 것이 몹시도 불안하게 하였다. 전자화가 몇번 말을 걸어 긴장을 풀어주었다. 아까 그 장모나 처제되는 여인들도 각각 봉황날개가 달린 수레를 타고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였다.


    한 문에 이르니 수의궁이라 적혀있었다. 그 곳의 뭇 선녀들도 순우분 곁으로 몰려와 순우분을 수례에서 절을 하게 하였는데, 읍을 하고 물러나고 계단을 오르고 내리는 모습이 속세와 같았다. 장막을 걸치고 얼굴을 가리던 부채를 치우자 한 여자가 보였는데, 그녀의 이름은 금지공주金枝公主로 나이는 14~15살쯤 되어보였고 조신한 것이 신선과 같았다. 또한 잠자리의 예법도 잘 알고 있었다.


    우분은 날이 갈 수록 부부간의 사이가 두터워지고 영화를 얻어, 밖으로 갈때의 수레나 의복, 연회에 오는 손님은 왕에 버금갔다. 왕은 우분과 뭇 관료들에게 군대를 모으도록 해서 도읍 서쪽의 영구산靈龜山에서 큰 사냥을 하였다. 영구산은 높고 험준하며 시냇물은 길고 연못은 넓었으며 수풀이 무성해 날짐승 들짐승 할 것 없이 없는 동물이 없었다. 다들 많은 사냥감을 가지고 저녁이 되어 돌아왔다.


     우분은 어느날 왕에게 아뢰길

    "제가 결혼하던 날에 왕께서는 제 부친의 명을 받아 절 부마로 삼는다고 하셨습니다. 부친께서는 변방의 장수를 보좌하시었는데 전세가 불리해져 오랑캐 수중에 떨어지게 된 이후로 소식이 끊긴지 17~18년이 되었습니다. 왕께서는 부친께서 어디에 사시는지 알고 계신다면, 신 청하옵건데 한번 가서 뵙는 기회를 주십시오.

    왕이 급하게 말하길

    "그대 부친은 북녘을 지키고 계시며 우리와 서신왕래를 계속 하고 있소. 그대가 편지를 써서 현재 상황을 일러주면 되고 굳이 갈 필요는 없소."


    우분은 아내에게 아버지에게 드릴 예물을 준비해 보내었다. 며칠뒤 답변이 왔는데 우분이 그 편지를 읽어보니, 모두 아버지가 지난날 하신 것과 다르지 않았다. 또한, 글에는 옛날 가르치셨던 말이나 자상하시신 것이 옛날과 같았다.

    우분은 친척들이 살아있는지 마을은 달라진게 없는지 묻자, 답신이 오기를 거리는 멀고 험해 바람이나 연기조차 닿지 못하는 곳이라 하니 그 문장은 참으로 비통하고 말씀이 애절하였다. 또한, 그에게는 만나러오지 말라고 하시며 정축丁丑년에는 너와 만나게 될 것이다.라고 적혀있었다. 우분은 이 편지를 받아보고는 슬퍼 흐느끼며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후 어느날 아내가 우분에게 말하길

    "당신은 어찌 정치를 하시려 들지 않습니까?"

    우분이 말하길

    "나는 여지껏 방탕하게 살아 정사에 대해 배운 바가 없소."

    아내가 말하길

    "당신은 그저 하시면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아내는 왕에게 이를 말했다.

    몇일이 지나 왕이 우분에게 말하였다.

    "우리 남가南柯의 정사가 잘못되어 태수를 폐하였는데, 경의 재능을 빌려, 경이 공주를 데리고 그곳에 갔으면 하오."

    우분은 두터운 왕의 뜻을 받아 태수가 되었다.


    왕은 칙을 내려 태수의 여장을 꾸리게 하였다. 여장으로는 금과 옥 그리고 수놓인 비단을 담은 상자, 하인과 수레와 말을 내리고 대로에서 공주 일행이 부임지로 떠나는 것을 직접 전송하였다. 우분은 어려서부터 협객에 불과해 일찍이 이렇게 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한터라 그 기쁨이 심히 대단하였다.


    그는 왕에게 글을 올려 말하길

    "신은 장수 집안에서 자라났으나 어느 기예를 쌓은 바가 없는데 외람되지만 이런 큰 임무를 맡게 되어, 조정의 규범을 망치고 제가 감당하지 못할 자리에 올라 내리신 바를 다하지 못할까 걱정됩니다. 이에 현명하고 슬기로운 이를 구해 부족함을 채우고자 합니다.

     사예직에 있는 영천穎川의 주변은 충성스럽고 강직하며 법을 지키고 한쪽에 치우지지 않는 보좌의 기품을 지닌 자이고, 처사직에 있는 풍익의 전자화는 청렴하고 근신하며 언변이 능통해 정치의 근본에 통달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은 신과 십여년 지기로 재능이나 장점을 잘 알고 있어 정사를 부탁해도 좋을테니, 주변을 남가군 사헌으로 전자화를 남가군 사농으로 임명해주시길 청합니다. 그렇게 된다면 신의 치적은 유명해지고 나라의 헌장 또한 문란해지지 않을겁니다."

    왕은 이를 보고는 두 사람 모두 파견해주었다.


    그날 저녁 왕은 부인과 함께 도읍 남쪽에서 우분을 전별했다.

    왕이 우분에게 말하길

    "남가는 우리나라에서 큰 군으로 토지가 비옥하여 풍년이 들지만, 인물들엔 호걸이 많아 훌륭한 정치를 하지 못하면 그들을 다스릴 수 없소. 그대에겐 주변과 전자화 두 사람이 있으니 경은 정무에 힘써 국념에 부합하시오."


    그리고 부인도 공주에게 경계하는 말을 일러주길

    "순우랑(순우분)은 성격은 강인하나 술을 좋아하고, 거기에 나이까지 젊어 그의 아내 노릇하기에는 유순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단다. 네가 그를 잘 섬기면 나는 걱정이 없겠구나. 남가군의 토지는 그렇게 먼 곳은 아니지만 아침저녁으로는 만날수 없어 오늘 이렇게 작별하게 되니 어찌 눈물을 훔치지 않겠느냐."


    우분은 아내와 함께 절을 올리고는 남쪽으로 향했다. 수레에 올라 기마의 호위를 받으며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몇일이 지나 남가군에 도착했다. 남가군에는 관리, 승려, 도사, 현명한 늙은이들과 악대와 수레와 호위대와 방울을 단 부대가 앞다투듯 나와 새 태수를 맞이하였다.


    남가군 거리에는 사람과 물건이 들끓고 종과 북소리가 요란한 게 십리나 넘게 이어졌다. 성 위에 쌓은 울타리나 망대를 보니 상서로운 기운이 충만하였다. 성문에 들어사자 그 문에는 황금색 글씨로 남가군성이라 크게 적혀있었다. 우분이 거처할 곳은 창문이 붉게 칠해져있었고, 분위기가 삼엄하면서도 아늑하고 고요했다. 우분은 수레에서 내려 부임지의 풍속을 관찰하고 병폐를 개선하였다. 또한 정사는 주변과 전사화 두사람에게 맡기어 남사군은 잘 나아갔다.


    우분이 남가군 태수가 된지 20년 그의 정치로 백성을 교화가 널리 이루어져 백성들은 그를 칭송하였고 공덕비를 세우고 사당까지 세워 신으로 모셨다. 왕도 그를 중하게 여기고 봉토와 작위를 하사하고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주변과 전자화 모두 정게에 이름을 널리 알렸고 높은 관직에 올랐다. 우분은 다섯 아들과 두 딸을 두었는데, 아들은 모두 음서로 관직을 얻었고, 딸들도 왕족에게 시집갔다. 이렇게 빛나는 영화는 일대를 호령하여 그와 어깨를 나란이 할 자가 없었다.


    그 해에 단라국檀蘿國에서 남가군으로 처들어왔다. 왕은 우분에게 명령하여 장병들을 훈련시키고 그들을 정벌하도록 했다. 이에 우분은 왕에게 표를 올려, 주변에게 3만의 군사를 주어 요대성에서 적군과 싸우게 했다. 주변은 강직하고 용맹해 적을 얕보았기 때문에 크게 패하고 홀로 무기와 갑옷을 버린채 말을 타고 숨어있다가 밤이 되서야 성으로 돌아왔다.


    적은 군수품과 갑옷을 챙겨 돌아갔다. 우분은 주변을 잡아가두고는 왕에게 자신과 주변의 처분을 물었다. 왕은 그들을 사면했다. 이 달, 주변은 등창이 나서 죽고 말았으며 우분의 아내 공주도 병이나 열흘 만에 죽고 말았다. 그래서 우분은 태수직에서 물러나 상을 치르기 위해 도읍으로 돌아갈 것을 청했고 왕은 이를 허락했다. 사농이던 전자화가 태수를 대행하였다.


    그는 애통한 마음으로 발인하였다. 그 행렬은 위엄이 있었으며 행렬을 본 이는 남녀할것 없이 모두 소리내 울었다. 백성들과 관리들은 술과 음식을 올렸고 수레를 붙들어 길을 막은 이의 수를 헤아릴 수도 없었다. 이윽고 도읍에 도달하니 왕과 부인은 상복을 하고 교외까지 나와 곡을 하며 공주의 운구를 기다렸다.


    공주에게는 순의공주라는 시호가 내려졌으며, 의장대는 새의 깃으로 장식한 덮개와 비단으로 만든 우산을 갖추어 수도 동쪽 10리 밖 반룡강 언덕에 매장하였다. 그달 주변의 아들인 주영신도 아버지를 운구해 왔다.


    우분은 오래간 변방에 있었지만 중앙과 인연을 맺어 명문 귀족들과 모두 친하게 지내었다. 그래서 태수를 그만두고 올라왔으나 자유롭게 왕래하고 교류를 빈번히 하여 그의 위세가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왕은 우분을 의심하고 꺼리기 시작하였다.


    이떄에 나라에 아무개가 표를 올리며 말하길

    "하늘에 괴이한 기운이 보이니, 나라에 큰 화가 있을 겁니다. 도읍을 옮기게 되고 종묘사직은 무너질어려울 겁니다. 이 난리는 이민족에게 일어나지만 일은 나라 안에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우분이 사치를 부렸던 것에 대한 하늘의 벌이라고 하였다. 마침내 왕은 그의 호위병을 빼앗고, 그와 교류하는 것을 금하고 집안에만 있게 하였다. 우분은 남가군을 다스리던 수 년간 정치를 잘못하지 않았다고 여겼는데 유언비어와 모함에 말려들어 우울하기만 하여 기쁘지 못했다.


    왕도 그의 마음을 알아채리고 우분에게 이렇게 명을 내렸다.

    "그대와 인척이 된지 20여년이 되었다. 내 딸은 일찍 죽어 그대와 백년해로를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이는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부인이 손주들을 왕궁에서 지내게 하였다.

    또, 왕이 우분에게 말하길

    "경은 집을 떠난지 오래 되었으니, 잠시 고향에 돌아가 한번 친족들을 만나도록 하라. 손자들은 여기에 남겨놓고 가되, 염려할 필요는 없다. 3년 후 내 그대를 맞이하도록 할테니."

    우분이 말하길

    "이 곳이 제 집인데 또 어디로 돌아가란 말씀이십니까?"

    왕이 웃으며 말하길

    "그대는 본래 사람으로 집은 이곳이 아니었도다."


     이 말을 듣자 우분은 정신이 몽롱해져 넋을 잃고 있다가 비로소 지난 일을 기억해내 눈물을 흘리며 돌려 보내주길 청하였다. 왕은 좌우로 신하들을 두러보고는 그를 보내도록 하였다. 우분은 왕에게 절을 하고 가는데 이전에 자신을 데려왔던 자주색 옷을 입은 사자 두명이 그를 따랐다.


    대문에 이르니, 타야할 매우 보잘것 없는 수레가 준비되어 있었다. 또 그 수레 좌우로 수행할 하인들이 한명도 없어 마음이 심히 슬펐다. 우분이 수레에 올라타 몇리를 가니 큰 성이 나타났다. 그 성은 예전에 이곳에 올때의 길이 틀림없었고 산천초목의 모습이 옛날과 다르지 않았다. 우분을 호송하는 두 사자는 위세가 너무 없어보여 유쾌하지 못했다.


    우분이 사자에게 말하길

    "굉릉군은 언제 도착하오?"

    두 사자는 노래만 부르고 있다가 한참 뒤에 답하길,

    "잠시 후 도착합니다."

    그리고 나서 한 동굴을 통해 나오니 고향 마을이 보였는데 지난 날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슬퍼 눈물을 흘렸다. 두 사자는 그를 수레에서 내리게 했다.

    우분이 집에 들어가 계단에 오르자 자신의 몸이 동쪽 방에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우분은 매우 놀라고 또 두려워 감히 앞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두 사자는 큰 소리로 우분의 이름을 몇번 부르니 우분은 비로소 잠들기 전 자신으로 깨어났다.


    집의 어린 시종들이 마당을 쓸고 있고, 두 친구들이 걸상에 앉아 발을 씻고 있으며 석양이 아직 서쪽 울타리를 넘지 않고 먹다 남은 술잔이 동쪽 창가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꿈속에서 순식간에 한 평생을 살아온 것 같았다. 우분은 감동하며 탄식하고는 두 친구를 불러다가 겪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들은 깜작 놀라 밖으로 나가 홰나무 밑에 구멍을 찾아냈다.

    우분은 구멍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내가 꿈속에서 들어갔던 곳이야"

    두 친구는 여우나 너구리 혹은 나무의 정령이 홀린 거라면서 하인에게 도끼를 가져오게 해 뿌리줄기를 잘라 다듬어 구멍의 근원을 찾으려 했다.

    옆으로 1 장쯤 파고 들어갔을 때 큰 구멍이 나타났는데, 침상 하나는 들어갈 정도로 큰 구멍이었다. 


    구멍 위쪽에는 성곽과 돈대와 궁전 모양으로 흙이 쌓여 있었는데 수십 말이나 되는 개미들이 그곳에 숨어 있었다. 그 중간에는 조그만한 돈대가 있는데, 그 색이 붉은듯 하며, 큰 개미 두마리가 있었다. 날개는 희고 머리는 붉으며 세마디 쯤 하는듯 했다. 그 좌우로 큰 개미 수십마리가 지키고 있어 다른 개미는 감히 다가가지도 못했는데, 그 개미가 왕이었고, 이곳이 괴안국의 수도였던 것이다.


     또, 굴을 남쪽으로 파고 들어가니 똑바로 뻗은 가지로 4장 쯤 되는 곳에 굽었다가 평평해지는 곳이 있었는데, 그 곳에도 성과 누곽 모양으로 흙이 쌓여있었고 한 무리의 개미뗴가 있었다. 이곳이 우분이 다스렸던 남가군이었던 것이다.


    또, 굴을 서쪽으로 2장 쯤 파보니 널찍하게 텅 비어있고 올록볼록한 특이한 모양새를 한 것이 있었는데, 그 중 썩어문들어진 거북 껍닥지가 하나 있었는데 한 말만 했다. 거기에 빗물이 스며들어 작은 풀이 무성하게 나있어 껍닥지가 풀에 덮여있었는데, 이것이 순우분이 사냥했던 영구산이었던 것이다.


    또, 굴을 찾아 동쪽으로 1장 쯤 파보니 묵은 나무 뿌리가 굽은 것이 마치 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작은 흙더미가 있어 높이가 1 척쯤 되었는데, 이것이 우분이 반룡강 언덕에 묻었던 아내의 무덤이었던 것이다.


    지난 일을 더듬어 생각하고는 마음 속으로 감탄하며 파헤쳐 들어가 흔적을 살펴볼때마다 꿈에서 겪은 것과 부합하였다. 그래서 그는 두 친구가 이 굴을 허물지 않았으면 해서 이전과 같이 덮어두도록 하였다.


     그날 밤 비바람이 몰아쳤다. 아침에 나가 굴을 살펴보니 개미떼가 보이지 않았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이는 앞서 꿈속에서 말했던 "나라에 큰 재앙이 있어 도읍을 옮기게 된다."고 하였는데 이를 말하는 것이었다. 우분은 단라국을 정벌하려던 일을 떠올려 또, 두 친구에게 부탁해 그 흔적을 찾아보았다. 집에서 동쪽으로 1리 쯤 떨어진 곳에 말라버린 개천이 있고 그 옆에 큰 박달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등나무 덩쿨이 휘감기어 햇볕이 보이지 않았다. 그 옆에 조그마한 구멍이 있었고, 이 구멍도 개미무리가 모여 숨어 살고 있었다.


    단라국이 어찌 이곳이 아니겠는가?

    아! 개미와 같은 조그마한 곤충의 신령스러움도 알 수 없는데, 하물며 산과 나무에 숨은 큰 동물의 변화는 어찌 알겠는가.


    그떄 우분의 술친구였던 주변과 전자화는 육합현六合縣에 살고 있었는데, 우분과 만나지 못한지 10여일이 지났다 그는 시종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는데, 주생은 병으로 급히 죽고 전자화도 병들어 누워있다고 한다.


     우분은 남가에서의 허무함과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마침내 도교에 귀의하여 술을 끊고 여자를 멀리하였다. 그 후 3년이 지난 정축년에 그도 집에서 죽고 말았는데, 그의 나이 47세로 꿈속에서 왕이 약속했던 기한과 꼭 맞아떨어졌다.


    공좌公佐(저자)는 정원貞元 18년 가을 8월에 오군에서 낙양으로 가는 길에 잠시 회포에서 쉰적이 있는데, 우연히 순우분의 초상화를 보고 그의 무덤을 물어 여러번 조사해보니 이 모든게 사실이었으므로 이를 글로 적어 이야기로 만들어 호사가들에게 내보였다. 


    비록 귀신이나 괴이한 것을 다루어 말하는 것은 성인이 남긴 경전에서 어긋나지만[각주:6], 벼슬자리를 도적질하는 이들에게 경계가 되었으면 하는 바이다. 후세의 군자들은 이 남가의 일화를 우연한 일이라 무시하지 말고 명성이나 지위가 있다 한들 천지에 교만하고 사치를 부리지말라는 바이다.


    전화주참군前華州參軍 이조李肇는 찬을 지어 말했다.

    "신분과 벼슬과 지위가 높아 , 권세가 나라를 움직여도

    달인의 눈에는 개미 무리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각주:7] 東平淳于棼,吳楚遊俠之士,嗜酒使氣,不守細行,累巨產,養豪客。曾以武藝補淮南軍裨將,因使酒忤帥,斥逐落魄,縱誕飲酒為事。家住廣陵郡東十里,所居宅南有大古槐一株,枝幹修密,清陰數畝,淳於生日與群豪大飲其下。唐貞元七年九月,因沈醉致疾,時二友人於坐,扶生歸家,臥於堂東廡之下。二友謂生曰:「子其寢矣,余將秣馬濯足,俟子小愈而去。」生解巾就枕,昏然忽忽,彷彿若夢。見二紫衣使者,跪拜生曰:「槐安國王遣小臣致命奉邀。」生不覺下榻整衣,隨二使至門。見青油小車,駕以四牡,左右從者七八,扶生上車,出大戶,指古槐穴而去,使者即驅入穴中。生意頗甚異之,不敢致問。忽見山川風候,草木道路,與人世甚殊。前行數十里,有郛郭城堞,車輿人物,不絕於路。生左右傳車者傳呼甚嚴,行者亦爭辟於左右。又入大城,朱門重樓,樓上有金書,題曰「大槐安國」。


    執門者趨拜奔走,旋有一騎傳呼曰:「王以駙馬遠降,令且息東華館。」因前導而去。俄見一門洞開,生降車而入。彩檻雕楹,華木珍果,列植於庭下;几案茵褥,簾幃餚膳,陳設於庭上。生心甚自悅。復有呼曰:「右相且至。」生降階祗奉。有一人紫衣象簡前趨,賓主之儀敬盡焉。右相曰:「寡君不以弊國遠僻,奉迎君子,托以姻親。」生曰:「某以賤劣之軀,豈敢是望。」右相因請生同詣其所。行可百步,入朱門,矛戟斧鉞,布列左右,軍吏數百,辟易道側。生有平生酒徒周弁者,亦趨其中,生私心悅之,不敢前問。右相引生升廣殿,御衛嚴肅,若至尊之所。見一人長大端嚴,居正位,衣素練服,簪朱華冠。生戰栗,不敢仰視。左右侍者令生拜,王曰:「前奉賢尊命,不棄小國,許令次女瑤芳奉事君子。」生但俯伏而已,不敢致詞。王曰:「且就賓宇,續造儀式。」


    有旨,右相亦與生偕還館舍。生思念之,意以為父在邊將,因沒虜中,不知存亡。將謂父北蕃交通,而致茲事,心甚迷惑,不知其由。是夕,羔雁幣帛,威容儀度,妓樂絲竹,餚膳燈燭,車騎禮物之用,無不咸備。有群女,或稱華陽姑,或稱青溪姑,或稱上仙子,或稱下仙子,若是者數輩,皆侍從數千,冠翠鳳冠,衣金霞帔,采碧金鈿,目不可視。遨遊戲樂,往來其門,爭以淳于郎為戲弄。風態妖麗,言詞巧艷,生莫能對。


    復有一女謂生曰:「昨上巳日,吾從靈芝夫人過禪智寺,於天竹院觀右延舞《婆羅門》,吾與諸女坐北牖石榻上。時君少年,亦解騎來看,君獨強來親洽,言調笑謔。吾與瓊英妹結絳巾,掛於竹枝上,君獨不憶念之乎?又七月十六日,吾於孝感寺侍上真子,聽契玄法師講《觀音經》。吾於講下捨金鳳釵兩支,上真子捨水犀合子一枚,時君亦講筵中,於師處請釵合視之,賞歎再三,嗟異良久。顧余輩曰:『人之與物,皆非世間所有。』或問吾民,或訪吾里,吾亦不答。情意戀戀,矚盼不舍,君豈不思念之乎?」生曰:「中心藏之,何日忘之。」群女曰:「不意今日與君為眷屬。」


    復有三人,冠帶甚偉,前拜生曰:「奉命為駙馬相者。」中一人,與生且故,生指曰:「子非馮翊田子華乎?」田曰:「然。」生前,執手敘舊久之。生謂曰:「子何以居此?」子華曰:「吾放遊,獲受知於右相武成侯段公,因以棲托。」生復問曰:「周弁在此,知之乎?」子華曰:「周生貴人也,職為司隸,權勢甚盛,吾數蒙庇護。」言笑甚歡。俄傳聲曰:「駙馬可進矣。」三子取劍佩冕服更衣之。子華曰:「不意今日獲睹盛禮,無以相忘也。」


    有仙姬數十,奏諸異樂,婉轉清亮,曲調淒悲,非人間之所聞聽。有執燭引導者亦數十,左右見金翠步障,彩碧玲瓏,不斷數里。生端坐車中,心意恍惚,甚不自安,田子華數言笑以解之。向者群女姑娣,各乘鳳翼輦,亦往來其間。至一門,號修儀宮,群仙姑姊,亦紛然在側。令生降車輦拜,揖讓升降,一如人間。撤障去扇,見一女子,雲號金枝公主,年可十四五,儼若神仙。交歡之禮,頗亦明顯。


    生自爾情義日洽,榮曜日盛,出入車服,遊宴賓御,次於王者。王命生與群僚備武衛,大獵於國西靈龜山。山阜峻秀,川澤廣遠,林樹豐茂,飛禽走獸,無不蓄之。師徒大獲,竟夕而還。


    生因他日啟王曰:「臣頃結好之日,大王雲奉臣父之命。臣父頃佐邊將,用兵失利,陷沒胡中,爾來絕書信十七八歲矣。王既知所在,臣請一往拜覲。」王遽謂曰:「親家翁職守北土,信問不絕,卿但具書狀知聞,未用便去。」遂命妻致饋賀之禮,一以遣之。數夕還答,生驗書本意,皆父平生之跡,書中憶念教誨,情意委屈,皆如昔年。復問生親戚存亡,閭里興廢。復言路道乖遠,風煙阻絕,詞意悲苦,言語哀傷,又不令生來覲。雲歲在丁丑,當與女相見。生捧書悲咽,情不自堪。


    他日,妻謂生曰:「子豈不思為政乎?」生曰:「我放蕩,不習政事。」妻曰:「卿但為之,余當奉贊。」妻遂白於王。累日,謂生曰:「吾南柯政事不理,太守黜廢,欲藉卿才,可曲屈之,便與小女同行。」生敦受教命。


    王遂敕有司備太守行李,因出金玉錦繡,箱奩僕妾車馬列於廣衢,以餞公主之行。生少遊俠,曾不敢有望,至是甚悅。因上表曰:「臣將門餘子,素無藝術。猥當大任,必敗朝章。自悲負乘,坐致覆癐。今欲廣求賢哲,以贊不逮。伏見司隸穎川周弁忠亮剛直,守法不回,有毗佐之器。處士馮翊田子華清慎通變,達政化之源。二人與臣有十年之舊,備知才用,可托政事。周請署南柯司憲,田請署司農,庶使臣政績有聞,憲章不紊也。」王並依表以遣之。


    其夕,王與夫人餞於國南。王謂生曰:「南柯國之大郡,土地豐壤,人物豪盛,非惠政不能以治之,況有周田二贊,卿其勉之,以副國念。」夫人戒公主曰:「淳于郎性剛好酒,加之少年,為婦之道,貴乎柔順,爾善事之,吾無憂矣。南柯雖封境不遙,晨昏有間,今日暌別,寧不沾巾。」


    生與妻拜首南去,登車擁騎,言笑甚歡,累夕達郡。郡有官吏僧道耆老音樂車輿武衛鑾鈴,爭來迎奉,人物闐咽,鐘鼓喧嘩,不絕十數里。見雉堞臺觀,佳氣鬱鬱。入大城門,門亦有大榜,題以金字,曰「南柯郡城」,是朱軒棨戶,森然深邃。生下車,省風俗,療病苦,政事委以周田,郡中大理。


    自守郡二十載,風化廣被,百姓歌謠,建功德碑,立生祠宇。王甚重之,賜食邑,錫爵位,居臺輔。周田皆以政治著聞,遞遷大位。生有五男二女,男以門蔭授官,女亦娉於王族,榮耀顯赫,一時之盛,代莫比之。


    是歲,有檀蘿國者,來伐是郡。王命生練將訓師以征之,乃表周弁將兵三萬,以拒賊之眾於瑤臺城。弁剛勇輕進,師徒敗績,弁單騎裸身潛遁,夜歸城,


    賊亦收輜重鎧甲而還。生因囚弁以請罪,王並捨之。是月,司憲周弁疽發背卒。生妻公主遘疾,旬日又薨。生因請罷郡,護喪赴國,王許之,便以司農田子華行南柯太守事。


    生哀慟發引,威儀在途,男女叫號,人吏奠饌,攀轅遮道者,不可勝數,遂達於國。王與夫人素衣哭於郊,候靈輿之至。


    謚公主曰順儀公主,備儀仗羽葆鼓吹,葬於國東十里盤龍岡。是月,故司憲子榮信亦護喪赴國。


    生久鎮外藩,結好中國,貴門豪族,靡不是洽。自罷郡還國,出入無恆,交遊賓從,威福日盛,王意疑憚之。


    時有國人上表云:「玄象謫見,國有大恐,都邑遷徙,宗廟崩壞。釁起他族,事在蕭牆。」


    時議以生侈僭之應也,遂奪生侍衛,禁生遊從,處之私第。生自恃守郡多年,曾無敗政,流言怨悖,鬱鬱不樂。


    王亦知之,因命生曰:「姻親二十餘年,不幸小女夭枉,不得與君子偕老,良用痛傷。夫人因留孫自鞠育之。」又謂生曰:「卿離家多時,可暫歸本里,一見親族,諸孫留此,無以為念。後三年,當令迎生。」生曰:「此乃家矣,何更歸焉?」王笑曰:「卿本人間,家非在此。」


    生忽若惛睡,瞢然久之,方乃發悟前事,遂流涕請還。王顧左右以送生,生再拜而去。復見前二紫衣使者從焉,


    至大戶外,見所乘車甚劣,左右親使御僕,遂無一人,心甚歎異。生上車行可數里,復出大城,宛是昔年東來之途,山川源野,依然如舊。所送二使者,甚無威勢,生逾怏怏。


    生問使者曰:「廣陵郡何時可到?」二使謳歌自若。久之乃答曰:「少頃即至。」俄出一穴,見本里閭巷,不改往日。潸然自悲,不覺流涕。二使者引生下車,入其門,升自階,己身臥於堂東廡之下。生甚驚畏,不敢前近。二使因大呼生之姓名數聲,生遂發寤如初,


    見家之僮僕,擁篲於庭,二客濯足於榻,斜日未隱於西垣,餘樽尚湛於東牖。夢中倏忽,若度一世矣,生感念嗟歎,


    遂呼二客而語之,驚駭,因與生出外,尋槐下穴。生指曰:「此即夢中所驚入處。」二客將謂狐狸木媚之所為祟,遂命僕夫荷斤斧,斷擁腫,折查蘗,尋穴究源。旁可袤丈,有大穴,根洞然明朗,可容一榻,


    上有積土壤,以為城郭臺殿之狀,有蟻數斛,隱聚其中。中有小臺,其色若丹,二大蟻處之,素翼朱首,長可三寸,左右大蟻數十輔之,諸蟻不敢近,此其王矣,即槐安國都也。


    又窮一穴,直上南枝可四丈,宛轉方中,亦有土城小樓,群蟻亦處其中,即生所領南柯郡也。


    又一穴,西去二丈,磅礡空朽,嵌窞異狀,中有一腐龜殼,大如斗,積雨浸潤,小草叢生,繁茂翳薈,掩映振殼,即生所獵靈龜山也。


    又窮一穴,東去丈餘,古根盤屈,若龍虺之狀,中有小土壤,高尺餘,即生所葬妻盤龍岡之墓也。


    追想前事,感歎於懷,披閱窮跡,皆符所夢。不欲二客壞之,遽令掩塞如舊。


    是夕,風雨暴發。旦視其穴,遂失群蟻,莫知所去。故先言國有大恐,都邑遷徙,此其驗矣。復念檀蘿征伐之事,又請二客訪跡於外。宅東一里,有古涸澗,側有大檀樹一株,藤蘿擁織,上不見日,旁有小穴,亦有群蟻隱聚其間,


    檀蘿之國,豈非此耶!

    嗟乎!蟻之靈異,猶不可窮,況山藏木伏之大者所變化乎?


    時生酒徒周弁、田子華,並居六合縣,不與生過從旬日矣,生遽遣家僮疾往候之。周生暴疾已逝,田子華亦寢疾於床。


    生感南柯之浮虛,悟人世之倏忽,遂棲心道門,絕棄酒色。後三年,歲在丁丑,亦終於家,時年四十七,將符宿契之限矣。


    公佐貞元十八年秋八月,自吳之洛,暫泊淮浦,偶覿淳于生棼,詢訪遺跡。翻復再三,事皆摭實,輒編錄成傳,以資好事。


    雖稽神語怪,事涉非經,而竊位著生,冀將為戒。後之君子,幸以南柯為偶然,無以名位驕於天壤間雲。


    前華州參軍李肇贊曰:「貴極祿位,權傾國都。達人視此,蟻聚何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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