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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부 「불타오르는 사쿠라이 사」 炎符「桜井寺炎上」
    모토네타-게임( 동방 프로젝트 )/◎ th13 신령묘 2012. 5. 18. 21:03

    이지와 노멀에서는 염부 폐불의 불바람炎符廃仏炎風」이죠.

     

    29대 킨메이 천황欽明天皇 13(552) 겨울 10월 백제의 26대 왕인 성왕聖王이 보낸 석가모니 금동상金銅像 하나와 번개幡盖 약간 , 경론經論 몇권을 하사해 불교를 전래하자 천황은 이 불교를 받아들일지 여러 신하들을 불러다 논하게 했습니다.

     

    소가노 이나메蘇我稲目가 서쪽의 여러 나라들이 하나같이 받들고 있으니 일본 혼자 등을 돌리겠습니까?라 말을 올리자

    모노노베노 오코시物部尾輿와 나카토미노 카마코中臣鎌子우리나라가 천하의 왕 노릇을 하게 된 것은 백팔십만 신을 춘하추동 제사를 지내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것을 고쳐 이웃나라의 신蕃神께 절을 올리면 국신의 노여움을 살 것입니다.라고 하자

     

    킨메이는 시험삼아 소가노 이나메에게 시험삼아 불교를 믿으라 했습니다. 이에 소가노 이나메는 무릎을 꿇으며 기뻐했고, 불상과 불구佛具를 먼저 오하리다小墾田[각주:1]에 있는 집에 안치하고, 이를 불도를 닦는 인연으로 하여 무쿠하라向原에 있는 집을 깨끗이 단정히 해서 절로 개축했습니다.

     

     이 절은 무쿠하라 사向原寺로 일본 최초의 절이었죠. 그런데 절을 세우자 역병이 유행해 모노노베노 오코시와 나카토미노 카마코가 불교를 받아드려 역병이 유행한 것이라며, 불상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킨메이는 그렇게 하라고 명을 내리자 오코시와 카마코가 불상을 나니와難波의 호리 강堀川[각주:2]에 내버리고, 가람伽藍에 불을 지르자 크게 대전大殿에 큰 불이 일어났다고 해. 이 이야기는 일본서기 말고도 원흥사가람연기元興寺伽藍縁起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각주:3]

     

    원흥사가람연기에 의하면 비다츠 천황敏達天皇 11(582)에 이 절을 사쿠라이 도장桜井道場(사쿠라이 사桜井寺)이라 하여, 다음 해부터 시바 타츠토司馬達等의 딸 젠신니善信尼와 그녀의 제자 2[각주:4]이 사쿠라이 도장에서 기거했는데,

     

    비다츠 14(585) 2월 역병이 돌아 죽는 백성이 많아지자, 3월 모노노베노 모리야物部守屋와 나카토미노 카츠미中臣勝海킨메이 대부터 폐하 대에 이르기까지 역병이 돌아 국민들이 죽어 나갑니다. 이는 소가가 불법佛法을 일으켰기에 때문입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러자 천황은 이렇게 명을 내렸습니다.

    극히 명백하구나. 불법을 그만두라.”

     

      3월 마지막 날 모리야는 사쿠라이 도장에 가서 탑을 잘라 허물고, 가람에 불을 붙여 불상과 불전을 불태웠습니다이 날은 맑았음에도 불이 붙자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렸다고 합니다. 타다 남은 불상은 나니와의 호리 강에 던져버렸죠. 

     

    모리야는 우의를 입은 채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와 승려들을 꾸짖고 사람들 앞에서 모욕하곤 우마코가 공양하는 젠신니외 비구니들을 불러다가 법의를 벗기곤 츠바이치海石榴市[각주:5]의 역사駅舎로 대려가 사람들 앞에서 채찍질 하고 가두었습니다.

     

    이렇게 불교를 탄압하자 두창이 만연하기 시작해 모리야와 비다츠 천황이 두창에 걸리고, 죽어가는 사람이 생겨났는데 세간에서는 불상을 태운 죄라고 수군거렸습니다.

     

    3개월이 지나 6월이 되자 우마코는 저는 불법의 힘을 빌어 두창을 낫고자 합니다.” 라고 청하자, 천황은 그대 혼자 불법을 섬겨라. 타인에게 전하지 말라.”라며 가둬둔 젠신니 일행을 풀어 주라 명을 내렸습니다. 풀려난 비구니들을 우마코는 절을 다시금 새로이 지어 공양했습니다.


     그 해 8월 비다츠 천황이 결국 두창으로 죽고 말아 뭇 신하들이 비다츠 천황의 시신앞에서 조문을 읽는 차례가 되었죠

    우마코가 칼을 차고 조문을 읽는데, 모리야는 그 모습을 보며 짐승에게 쓰는 화살에 맞은 참새같다.”라며 비웃고, 모리야가 몸을 벌벌 떨며 조문을 읽는 모습을 보곤 우마코가 방울이라도 달면 좋겠군.”이라 비웃자 우마코와 모리야는 서로가 서로를 원수보듯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는 다들 아시다시피 모리야와 우마코가 서로를 견제하다가 결국 소가노 우마코가 모노노베 씨를 멸족시키고 고작 3대라는 짧은 권세를 누리게 되었죠.


    이 사쿠라이 사桜井寺의 젠신니는 32대 스슌崇峻天皇 원년(588) 백제로 유학을 갔다가 스슌 3(590) 귀국해 사쿠라이 사의 주지가 되었습니다. 사쿠라이 사는 최초의 절을 복원한 절이면서 비구니 절尼寺이 되었습니다.


    불타오르는 사쿠라이 사는 소가노 우마코와 모노노베노 모리야의 알력다툼에서 모노노베노 모리야가 절을 불태웠다는 점을 모티프로 하지않았나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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