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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재지이의 상아
    모티프/유래 역사 관련 2016. 8. 13. 07:36

    태원에 사는 종자미가 아버지를 따라 유학을 갔다가 잠시 광릉 땅에 들리게 되었다. 종자미의 아버지는 홍교 아래 사는 임 노파와 각별한 사이였다. 하루는 홍교 다리를 건너던 부자가 우연히 임 노파와 마주치게 되었다. 노파는 부자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차를 권하며 이야기를 했다. 그 때 한 아가씨가 노파 곁에서 시중을 들었는데 빼어난 외모였다. 종자미의 아버지가 그녀 외모를 칭찬하자 노파가 종자미를 보며 말하기를

    "도련님은 처녀처럼 조용하고 수줍구만요. 복도 있어보이고 만약 싫지 않다면 저 아씨더러 도련님 시중을 들게 하면 어떻습니까?"

    종자미의 아버지는 웃으며 아들보고 일어사라 재촉하고는 노파에게 절을 올리게 하고는 말했다.

    "일언천금입니다!"

    노파는 원래 혼자 살았는데, 한 아가씨가 나타나 자신이 고독하고 힘든 처지를 하소연 하기에 이름을 물었더니 상아라 한다고 대답했다. 노파는 아가씨가 마음에 들어 같이 살고자 했지만 실은 그녀를 비싸게 팔으려는 속셈이었다.

    그때 종자미는 열 네살이었다. 상아를 흘겨보다가 그녀가 마음에 들어 아버지가 중매를 서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는 이를 잊었고 애가 타서 이 일을 어머니에게 몰래 고했고, 아버지는 이를 웃으며

    "지난번에는 욕심쟁이 할망구랑 농담을 했을 뿐이지 아가씨를 팔아 얼마나 황금을 챙길지 알지 못하는 마당에 어떻게 중매를 꺼내겠느냐?"

    이듬해 종자미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죽었다. 그는 상아를 끝내 잊지 못해 상이 끝나자마자 임 노파에게 사람을 보내 상아와 혼인하고자 했다. 노파는 애초에 승락한적이 없다 하자 종자미는 분통을 터트리며

    "내 한평생 누구에게도 허리를 굽힌 적이 없는데 어쨰 할마시는 제 성의를 한푼도 가치가 없다 보십니까 만약 전에 한 맹세를 물릴 거라면 보상앨 하십시오!"

    노파는 이에 대답하기를

    "예전에 아버님과는 농담삼아 그렇게 말했을지도 모르지만 정식으로 혼담이 오고간 적이 없어서 깜빡 잊었지 뭡니까. 이왕 혼담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내가 천자님에게 시집을 보내려 붙들겠습니까 날마다 치장시키며 붙들고 있었던 건 천냥이랑 바꿔 먹으려고 그런거였습니다. 지금은 그 반으로 깍아드리겠습니다 그럼 되겠습니까?"

    종자미는 그렇게 큰 돈이 없어 혼담을 무르게 되었다.

     그때 어느 과부가 종자미의 서쪽 집에 살게 되었는데 그 집에는 전당이라는 어린 딸이 있었다. 우연히 전당을 보았는데 우아함과 미모는 상아에게 결코 뒤지지 않았다. 종자미는 전당을 사랑하여 매일같이 선물을 준다며 들락거렸고 친한 사이가 되었다. 오고갈때마다 사랑어린 눈빛으로 전당을 바라보았지만 말을 걸 기회가 없었다.

    어느 날 저녁. 전당이 불을 빌리러 왔고 종자미는 기뻐하며 그녀를 끌어당겼고 이윽고 서로 사랑을 나누었다. 종자미는 부부가 되자 했지만 전당은 객지로 장사하러 간 오라버니가 돌아오지 않아 혼례를 혼자 정할 수 없다 거절했다. 두 사람은 기회만 있으면 왕래하며 친밀한 사이를 발전해갔다.

    하루는 종자미가 홍교를 지나다가 노파네 대문 안에 있는 상아를 보게 되었다. 그는 재빨리 자나가려 했지만 상아가 그를 보았고 들어오라 손짓하였다. 종자미는 멈추어섰고, 상아가 다시금 부르자 대문 안으로들어갔다. 상아는 약속을 어긴 종자미를 책망했다. 종자미는 자초지종을 고했는데, 상아는 방에 들어가더니 황금 한덩이를 들고 나왔다. 종자미는 받지 않고 사양하며 말하기를

    "나는 당신과 끝났다고 생각해 달리 혼약을 주고받은 이가 있소. 내가 황금을 받고 당신과 중매를 본다면 그 사람을 배신하는 짓이고 돈을 받고서도 중매를 보지 않는다면 당신을 배신하는 짓이요. 나는 배신따위는 정말 할 수 없소."

    상아는 한참 생각하더니

    "당신과 언약한 사람과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 당신들의 혼인은 결코 성사되지 않을 것이며, 성사되었다 한들 저는 당신의 배신을 원망하지 않을 겁니다. 어서 가세요. 할머니가 곧 오실겁니다." 종자미는 어찌할 바를 모르다 황금을 받아 돌아갔다.

    하룻밤이 지나고 종자미는 전당에게 이를 고백했다. 전당은 상아의 말이 옳다고 말하면서 상아에 대한 종자미의 마음이 변해서는 안된다 했다. 종자미가 아무말이 없자 전당은 자기가 상아보다 아래가 되겠다 하자 종자미는 기뻐했다. 그는 매파를 통해 임 노파에게 황금을 넘겼고 노파는 아무말 없이 상아를 종자미에게 보냈다. 상아가 종자미 네로 온 후 종자미는 상아에게 전당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상아는 미소를 띄우며 전당을 데려오는 것에 동의 했다. 종자미는 기뻐하며 얼른 전당에게 알리고 싶어했지만 전당은 한동안 발길을 끊었다.

    상아는 자기 때문인줄 알고는 친정에 다녀오기로 해 그들이 만날 기회를 주기로 했다. 또 종자미에게 허리춤에 달린 염낭을 꼭 훔쳐내라 전했다. 얼마 뒤 전당이 나타났다. 종자미는 혼인을 논의했지만 그녀는 그저 급할 것 없다 말하며 웃옷을 벗고는 종자미를 희롱하며 웃던 중 종자미는 전당의 허리춤 밑에 달린 보라색 주머니를 발견해 그걸 때어내려고 했다. 전당은 열굴 색이 변하며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당신은 누군가와 한통속이 되더니 내게는 딴마음을 품었군요. 배신자! 이제부터 끝인줄 아세요"

    종자미는 엎드려 빌며 사과했지만 전당은 듣지 않고는 가버렸다. 하루는 종자미가 그집 문 앞을 지나며 어떤지 보려했는데, 그 집에는 오나라에서 온 나그네가 살고 있고 전당 모녀는 진작에 이사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소식이 영영 끊겨버려 물어볼 방법이 없었다.

    종자미는 상아와 결혼하고는 집이 부자가 되었다. 건물을 잇달아 세워 길가까지 나갈 정도였다. 상아는 익살스러운 성격이었는데, 하루는 둘이서 미인도를 보던 중이었다. 종자미가

    "내 생각이지만 당신은 천하에 둘도 없는 미인이야. 내가 언제 조비연이나 양귀비를 봤어야 말이지."

    상아는 웃으며

    "당신이 보고 싶다면 그게 뭔 대수겠어요."

    상아는 미인이 그려진 두루마리를 쥐어 훑어 보더니 방에 들어가 치장하였다. 그녀는 조비연을 따라해 춤을 추었고 양귀비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것을 보여주었다. 상아는 키가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고 통통해지기도 마르기도 했는데, 그 렇게 변할때마다 분위기나 자태가 두루마리와 다를바 없었다. 상아가 흉내를 내던 때에 계집 종이 밖에서 들어오다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동료에게 누구냐 물었다.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웃었다. 종자미는 기뻐하며

    "나는 미인 한명과 결혼했는데 천고 이래 모든 미인이 안방에 있구려!"

    어느 밤 모두가 깊이 자고 있을 때 몇 명의 도적놈들이 문을 따고 들어왔다. 불 빛이 벽을 비추자 상아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놀란 말투로

    "도둑이 들었다!" 

    종자미는 얼핏 깨어 소리를 지르고자 했지만 한놈이 시퍼런 칼을 그의 목에 들이대고 있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또 다른 한놈이 상아를 둘러메고는 소란스럽게 떠나갔다. 종자미는 그제서야 소리를 질렀고 가솔들이 일제히 몰려들었다. 집안에 진귀한 것들은 모두 없어졌다. 종자미는 크게 슬퍼해 실성한 사람처럼 넋이 나갔다. 관아에 도둑이 들었다 신고도 했지만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삼사년 쯤 흐르고 아내도 없어 우울해하던 차에 시험을 빌미로 도읍으로 올라갔다. 반년간 점도 치고 돌아다니며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우연히 요항이라는 곳을 지나다가 한 여자와 마주쳤다. 그녀는 얼굴에 때가 가득하고 다 닳은 옷을 입고 있어 거지와 다름 없었지만 종자미는 발길을 멈추고 여자를 바라보았는데, 그 여자는 전당이었다. 크게 놀라며

    "당신은 어쩌다 이렇게 초췌해졌소?"

    전당이 답하기를

    "당신과 헤어지고 남쪽으로 이사갔는데, 노모는 세상을 떴고 나쁜 사람에게 속아 만주놈에게 팔려 욕먹고 매질 당하고 추위와 굶주림으로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지경입니다."

    종자미는 눈물을 흘리며 물었다.

    "당신을 내가 살 순 없겠소?"

    "어렵겠네요. 많은 돈이 드는데다가 당신 능력으론 힘들거에요."

    "당신에게는 사실을 고하자면, 근래에 조금 재산이 생겼다오. 객지에 나온 처지라 노자로 크게 못쓰지만  있는 돈 전부랑 말을 팔아서라도 당신을 구한다면 무엇을 사양하겠소. 당신 주인이 비싼 값을 부르면 고향에 갔다가 돈을 마련해 오리다."

    전당은 내일 성 서쪽의 버드나무가 우거진 곳에서 다시 만나자 약속했다. 반드시 혼자 와야한다고 했다. 종자미는

    "알겠소"

    다음날 일찍 나가자 여자는 이미 와 있었다. 옷은 선명한 색이 들었고 어제와 딴판이었다. 놀란 종자미가 묻자 전당이 웃으며 답하기를

    "어제는 당신 마음을 시험해보았습니다. 다행히도 제포지의綈袍之義[각주:1]가 그대로 있는걸 알았습니다. 저희 집에 한번 오시면 반드시 보답하겠어요."

    북쪽으로 몇발자국 가자 바로 전당의 집이었다. 그녀는 안주와 술을 내왔고 서로 이야기하며 술을 마셨다. 종자미는 전당에게 함께 돌아가자 했지만 전당은

    "저는 다른 일이 많이 있어 당신을 따라 갈 수 없어요. 상아의 소식이라면 조금 들었고요."

    종자미는 상아의 소재를 다급히 물었다. 전당이

    "그녀는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저도 잘 몰라요. 서산에 가면 애꾸인 늙은 비구니가 있는데 물어보면 그사람은 알거에요."

    그날 밤 전당은 종자미를 자기 집에서 재웠고 날이 밝자 서산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었다. 종자미는 오래된 절 한채에 도착했다. 절 주변 담장은 모두 무너졌는데, 대나무 숲 안쪽에 들어선 반 칸짜리 초가집에서 늙은 노파가 옷을 꿰매고 있었다. 그녀는 종자미가 온걸 보고도 대하지 않았다. 종자미가 공손이 인사를 하자 비구니는 그제서야 얼굴을 들며 어디에서 온 누구인지 물었다. 종자미가 자기를 소개하자 비구니는

    "나는 나이가 팔십먹은 늙은 장님으로 오래간 세상과 단절해 살았는데, 내가 무슨 수로 당신 부인 소식을 알겠소?"

    종자미가 몇번이고 묻자

    "나는 정말 모른다오. 두세 명의 친척이 내일 밤 나를 찾아오는데, 혹시 그런 젊은 여인네라면 알지 모른다오. 내일 밤에 다시 오시구려"

    종자미는 물러나고 이틀날 다시 찾았더니 비구니는 나가 없고 부서진 문은 빗장이 채워져 있었다. 한참을 기다리니 밝은 달이 가지에 높게 걸렸다. 아무대책 없이 서성이다가 저 멀리서 여인 두세 명이 초가집으로 들어가는걸 보았다. 그중에는 상아도 있었다. 종자미는 기쁨이 극에 달해 벌떡 일어나 재빨리 그녀의 소맷자락을 붙잡았다. 상아는

    "덤벙쟁이 서방님! 깜짝 놀랐잖아요! 미운 전당년이 혀를 놀렸군요. 그년은 사람을 정욕에 빠트릴 셈이로군."

    종자미는 상아를 끌어당겨 앉히고는 손을 잡으며 괴롭고 고생스러웠던 일을 하소연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울음을 삼키자 상아가 말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실은 유배된 항아로 인간 세상에 잠시 머물렀던 것 뿐입니다. 지금은 그 기한이 찼고 강도에게 약탈당한 것으로 위장한 것은 당신을 단념시키려던 것이었습니다. 비구니도 서왕모님을 지키는 이였고요. 저가 처음 귀양 왔을 적에 보살펴주시고 도와주셨던 분이라 시간이 되면 이렇게 찾아와 문안 인사를 드린답니다. 저를 놓아주시면 전당을 당신께 보내드리겠어요."

    종자미는 듣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인채로 흐느껴 울었다. 상아는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보다가

    "제 자매들이 왔어요."

    종자미가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상아는 가고 없었다. 종자미는 크게 곡하고 실성해. 더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허리띠를 풀어 스스로 목을 매었다.

    흐릿해지는 의식 속에서 종자미는 자신의 영혼이 몸을 떠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달리 가야할 곳을 몰라 당황하던 때 상아가 나타나 그를 붙잡고 혼을 끌어 당겼다.  종자미는 발이 땅으로 떨어지며 절로 다시 끌려갔다. 상아는 나무에 매달린 시체로 종자미의 영혼을 집어 넣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바보같은 서방님! 바보같은 서방님! 상아가 여기왔어요."

    종자미는 문득 꿈에서 깨어나듯 정신이 들었고 정신을 다잡는 사이 상아는 욕을 퍼부었다.

    "전당 몹쓸 계집년! 나를 해치고 서방님까지 죽이려 했군요. 나는 그년을 절대로 용서 할 수없어요!"

    산에서 내려와 수레를 빌려타 집에 돌아왔다. 종자미는 가솔들에게 행장을 준비하라 명령하고는 자신은 성 서쪽으로 나갔다. 전당을 찾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자 했지만 풍경이 전혀 달랐다. 놀라고 한탄하면서 돌아왔다. 이를 상아가 알지 못해 다행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집안에 돌아오자 상아는 웃으며

    "당신 전당은 만나셨나요?"

    종자미가 놀라 미쳐 대답하지 못하자 상아는

    "당신이 상아를 배신하고 전당을 찾아간들 어찌 만나겠습니까 가만히 앉아 기다리면 제 알아서 올겁니다."

    얼마지 않아 전당이 찾아와 황망한 모습으로 좌탑 아래 납작 엎드렸다. 상아는 전당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기며

    "요 고약한 년아 네 죄가 가볍지 않구나!"

    전당은 머리를 조아리며 그저 목숨만 살려달라 빌었다. 상아는

    "사람을 불구덩이 안에 처박아 놓고 제 혼자 하늘 밖으로 돌아나려고? 광한궁의 열한번째 아가씨가 조만간 하계로 시집을 오시는데 수놓인 배게 백 장과 신발 백 켤레가 필요하게 되었어. 너도 나를 따라가 일을 해야겠다."

    전당은 공손하게

    "일을 나눠 주신다면 기한에 맞게 보내드리겠습니다."

    상아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종자미에게

    "당신이 저애 사정을 봐달라고 하면 저도 용서하겠어요."

    전당은 간절히 종자미를 보았지만, 종자미는 웃기만 하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전당은 종자미를 노려보다가 집에 돌아가 식구들에게 인사하고 오겠다며 빌었다. 이를 허락하자 전당은 이내 갔다. 종자미가 그녀의 일생을 묻자 그재서야 전당이 서산에 사는 여우임을 알게되었다. 종자미는 수레를 사고 기다렸다.

    다음날. 약속대로 전당이 돌아오자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온 이후 상아는 몸가짐을 신중히 하였고 경거망동하거나 쉬이 웃지 않았다. 종자미가 동침 하자 하면 전당을 밀어넣었다. 전당은 영리하였고 사내를 홀리는 기술도 훌륭했다. 상아는 혼자서 자는 것을 즐겨해 종자미와 한방을 쓰더라도 동침은 하지 않았다.

    어느날. 삼경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린 뒤로도 전당의 방 안에서는 낄낄 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상아는 몸종으로 무슨 흉내를 내는지 알아보게 했다 몸종은 돌아와 알리지 않고는 부인께서 직접 보시라 하였다. 상아가 창으로 이를 훔쳐보았는데, 자기처럼 치장한 전당을 종자미가 껴안고는 '상아'라 불러대는 것이었다. 상아는 웃으며 자리를 떴다.

    얼마 뒤 전당은 가슴팍이 크게 아팠다. 옷을 급히 차려 입고는 종자미를 데리고 상아의 처소로 가 문에 들어가자마자 바닥에 엎드렸다. 상아는

    "내가 무슨 의사나 무당이라도 되는 줄 아냐? 스스로 가슴팍 붙잡고 서시 흉내내던 동티지."

    전당은 머리를 조아리며 죄를 안다 했다. 상아가

    "너 나았다."

    라고 하자 전당은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웃고는 돌아갔다. 한번은 전당이 남몰래 종자미에게 말했다.

    "저는 마님이 관음보살 흉내를 내게 할 수 있어요."

    종자미는 믿지 않았고 둘은 내기까지 했다. 상아는 매일 가부좌를 틀었는데, 눈을 감으면 자는 것처럼 보였다. 전당은 소리를 죽이고 조용히 옥으로 만든 화병에 버들가지를 꽂아 탁자 위에 올리고는 자기 머리를 풀어내린채 합장하며 상아 곁에 서 시중을 드는 채 했다. 전당이 앵두같은 입술을 반쯤 벌리자 박 속처럼 흰 이빨이 들어나고 깜빡임 없이 응시하자 종자미가 이를 보고 웃었다. 상아가 눈을 크게 뜨고 뭔 일이냐 묻자 전당이

    "관음보살님을 받드는 용녀 흉내를 내었어요."

    상아는 웃더니 동자가 관음보살께 절을 하는 벌을 내렸다. 전당은 머리채를 틀어 올리더니 사방 벽을 향해 절을 하고는 땅바닥에 엎드려 공중 재비를 돌면서 다양한 묘기를 선보였다. 왼쪽이나 오른쪽으로 몸을 꺾을 때면 버선이 귓가에 닿았다. 상아는 이를 보고는 크게 웃더니 앉은 자리에서 전당을 찼다. 전당은 고개를 우러러 입을 벌리고는 상아의 작은 발을 살짝 깨물었다. 상아는 한창 즐겁게 웃다가 실오라기 같은 정욕이 발끝에서 위로 치솟아 심장까지 닿는걸 느끼고는 음탕한 생각이 가득차 좀처럼 체할 수 없었다. 서둘러 정신을 가다듬고는 호통을 치며

    "이 여우년은 죽어 마땅해! 사람을 가리지 않고 함부로 홀리려하느냐!"

    전당은 겁에 질려 입을 벌리고 무릎꿀었다. 상아는 다시 그녀를 야단쳤는데 다른 사람들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상아는 종자미에게

    "전당의 여우 습성이 조금도 고쳐지지 않았어요. 방금도 하마터면 우롱당할뻔 했지 뭐에요. 만약 제가 수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타락할뻔 했지 뭐에요!"

    이때부터 상아는 전당을 엄하게 대하고 멀리 하려 했다. 전당은 부끄럽고 두려워해 종자미에게 호소했다.

    "저는 마님의 일거수일투족이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사랑이 지극하다보면 저도 모르게 친밀한 표현이 진해지는 법이지요. 혹 제게 딴 마음이 있다고 하면 감히 그럴수도 없거니와 저 자신도 참을 수 없습니다."

    종자미는 이를 상아에게 전했고 상아도 결국 전당을 처음 처럼 대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당의 까부는 일은 절제가 없었고 상아가 종자미에게 수차례 경고했지만 듣지 않았다. 이리하여 늙든 어리든 계집종들은 서로 다투고 장난치기를 즐기게 되었다.

    하루는 양귀비 흉내를 내는 계집종을 두 사람이 부축하게 되었다. 둘은 눈짓을 교환하더니 계집종에게 완전히 취해 힘이 안들어가는 모습을 하라고 하고는 두 손을 한번에 놓았다. 계집종은 계단 아래로 뒹굴면서 담벼락이 무너지듯 큰 소리가 났다. 사람들이 시끌벅적 하게 몰려들었다. 가까이 다가가 만져보니 계집종은 마외서 죽은 양귀비처럼 되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이 주인에게 급히 이를 알렸다. 상아는 크게 놀라며

    "결국 화를 입었어! 내가 그렇게 이야기 했는데!"

    그녀는 서둘러 시체가 있는 곳에 갔으나 달리 구해낼 수 없었다. 상아는 그 아비에게 사람을 보내 알렸다. 그 계집 종의 아비는 모갑은 본래 행실이 불량했다. 소식을 듣자마자 통곡하며 달려오더니 시처를 짊어지고는 대청으로 가서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종자미는 겁에 질려 문을 걸어 잠그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상아는 직접 밖에 나와 모갑을 책망하길

    "주인이 설사 계집종을 학대하다 죽었다 해도 보상해야할 법률은 없다. 게다가 그 애는 우연한 사고로 죽었을 뿐이며, 혹시 되살아날지 어떨지도 모르지 않느냐?"

    모갑이 큰소리로 떠들길

    "사지가 벌써 얼음장인데 어떻게 살아나!"

    상아가 말하길

    "시끄럽게 굴지마. 되살아나지 않아도 관아에서 해결할 문제야."

    상아는 대청으로 들어가 시체를 어루만지니 계집종이 살아나 손길이 스치는대로 몸을 일으켰다. 상아는 모갑을 향해 돌아서며 화를 내며

    "다행히 종년이 아직 안죽었는데 이 건달 놈팽이는 어찌 무례한가! 이놈을 묶어 관가로 압송하거라!" 모갑은 할말이 없어져 꿇어않아 용서를 빌었다. 상아는

    "네가 죄를 안다니 추궁하지 않겠다. 하지만 소인배 무뢰배가 이랬다 저랬다하는구나. 네 딸년을 그대로 두면 화근이 될테니 데리고 가는게 좋겠다. 몸값은 이만저만하니 속히 마련해 보내오너라."

    상아는 모갑에게 사람을 딸려보내 두세 명 마을 노인들을 증인으로 해달라 부탁해 문서 끝에 서명을 시켜 증서를 만들었다. 계집 종을 앞에 부르고 모갑에게 묻게 했다.

    "너 어디 아픈데는 없니?"

    "없어요."

    상아는 그제서야 계집종을 아비에게 데려가게 했다. 또 계집종등를 불러다가 훈계하고는 매를 때렸다. 또 전당을 불러다가 해서는 되는 일과 안되는 일을 구분할 것을 다짐받고 종자미에게

    "이제 사람 위에 있는 자가 웃거나 찡그리는 것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걸 아셨겠지요. 장난의 발단은 저에게 있었고 저 때문에 생긴 페단이라 끝내 말리지 못했습니다. 무릇 슬픈 것은 음에 속하고 기쁜 것은 양에 속한다는데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을 낳는 것은 순환의 법칙입니다. 계집종으로 일어난 재앙은 앞으로 일어날 재난들에 대한 귀신들의 경고입니다. 계속 멍청하게 굴면서 그 이치를 깨닫지 못한다면 철저하게 당할날이 머지 않을 겁니다."

    종자미는 경건한 자세로 이를 들었다. 전당은 울면서 자신을 구원해달라 애걸했다. 상아는 귀를 손가락으로 힘껏 집어당기다가 놓았다. 전당은  한동안 넋이 나가더니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 듯 땅에 엎드려 큰절을 올리고 춤추듯 기뻐했다.

    이때부터 안채는 조용하고 꺠끗해졌고 누가 감히 큰소리를 내는 이가 없었다. 계집 종은 자기 집으로 돌아간 뒤 멀쩡했다가 갑자기 죽었다.모갑은 딸의 몸값을 갚을 길이 만연해지자 마을 노인들에게 부탁해 봐달라 빌었고 상아는 이를 허락했다. 또 계집종이 일했던 정을 생각해 관 을 짜는 돈을 챙겨주었다.

    종자미는 자식이 없던 것이 항상 걱정이었는데, 하루는 상아 뱃속에서 애 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상아는 곧 왼쪽 옆구리를 칼로 가르고 아이를 꺼냈는데. 남자아이였다. 얼마 뒤 상아는 또 임신했고 이번엔 오른쪽을 가르고 딸을 끄집어냈다. 아들은 아버지를 빼닮았고 딸은 어머니와 빼닮았다. 그들 모두 장성해 명문집안과 혼인했다.


    이사씨는 말한다.

    양이 극한에 이르면 음이 생긴다고 했는데, 이 얼마나 좋은 말인가. 집안에 선인이 계시어 행복을 바라고 나를 최고로 즐겁게 하고 재앙을 없애주고 장수를 하게 해주시고 죽지 않게 해주신다면. 그것이야 말로 향락이요 늙어도 좋을 것이다. 어쨰서 선인은 새삼스럽게 이를 돌보며 걱정했을까? 하늘의 이치가 운행하고 순환하는 법칙이 이치에 알맞게 되리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일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긴 세월을 어렵고 힘들게 살며 운수가 나쁜 이들이 많은데 이를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옛날 송나라 떄 사람이 신선이 되려다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매일 "하루라도 선인이 될 수 있다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라고 했다는데, 나는 상아 이야기를 알게 된 이후로 더이상 그를 비웃을 수 없었다.



    2014/08/11 - [ /캐릭터 설정과 元ネタ] - 술벌레 주충酒蟲


    1. 옛 정을 잊지 아니함.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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