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노카카세오/아마츠미카보시는 일본서기 '본문'과 해당 본문의 일서에 등장하는 복종하지 않는 신まつろわぬ神으로 18세기 신토 학자이자 사상가였던 히라타 아츠타네平田篤胤가 금성, 별이 빛나는 모습에서 유래한 신으로 정의했습니다.
아메노카카세오/아마츠미카보시 일본서기와 고사기 등에서 최후까지 저항했던 타케미나카타建御名方와 동일시 하는 경우도 있으며, 신불습합을 통해, 불교에서 북극성의 신격화인 묘견보살妙見菩薩과 동일시 되었습니다.
일본서기 9단 본문
아마테라스 오오카미의 아들. 마사카아카츠카치하야히아메노오시호미미노 미코토正哉吾勝勝速日天忍穗耳尊가 타카미무스히高皇産靈尊의 딸인 타쿠하타치지히메栲幡千千姬를 아내로 삼아 아마츠히코히코호노니니기天津彦彦火瓊瓊杵尊를 낳았다. 이에 황조가 되시는 타카미무스히는 (니니기를) 특별히 귀여워하고 아끼며 사랑을 듬뿍 담아 키웠다.
황손인 아마츠히코히코호노니니기를 (우두머리로)세워서 아시하라노나카츠쿠니葦原中國의 주인으로 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 땅에는 반딧불이의 빛나듯 (멋대로) 빛을 내는 신이나 파리처럼 시끄럽고 (귀찮게구는) 사악한 신이 많았다. 또한, 산천초목들이 다 말을 하였다.
그러한고로 타카미무스히는 뭇 신들을 소집하여 "나는 아시하라노나카츠쿠니의 사악한 악귀들을 쓸어내려고 한다 누구를 보내는 것이 좋은가? 그대들은 허심탄회히 아는 것을 숨기지 말고 말하여라"라고 물으니 모든 신들이 "아메노호히天穗日命는 신 중의 호걸입니다. 그를 보내는게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타카미무스히는)신들의 의견을 쫓아, 아메노호히를 보내어 (지상을) 평정토록 하였다.
그러나 이 신은 국진신들의 수괴인 오오나무치大己貴神에게 아첨하며, 삼년이 지나도 보고하러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그의 아들 오오소비노미쿠마노우시大背飯三熊之大人 다른 이름으로는 타케미쿠마노우시武三熊之大人를 보내었다. 이 신도 지 아비와 같이 보고하러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하여 타카미무스히는 다시금 뭇 신들을 모아, 보낼만한 사람을 물었다. 모든 신들은 "아마츠쿠니타마天國玉의 아들인 아메노와카히코天稚彦는 신 중의 장사로 그를 보내는 게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타카미무스히는 아메노와카히코에게 아메노카고유미天鹿兒弓라고 하는 활과 아메노하하야天羽羽矢라고 하는 깃달린 화살을 내려주며 보내었다.
하지만 이 신도 충직하지 못하였다. 도착하자마자 우츠시쿠니타마顯國玉의 계집 시타테루히메下照姬 다른이름으론 타카히메高姬 또다른 이름으론 와카쿠니타마稚國玉를 아내로 삼고는 눌러 앉아 "나는 장차 아시하라노나카츠쿠니를 다스리고자 한다."라며 보고하러 돌아오지 않았다.
이 때에 타카미무스히는 그 오랫동안 보고하러 돌아오지 않는 것을 괴이하게 여겨 나나시키기시無名雉라고 하는 꿩을 보내며 어찌 보고하러 돌아오지 않는가를 묻도록 하였다. 그 꿩은 지상으로 내려가, 아메노와카히코 집 문앞에 심어진 유츠카츠라의 가지에 앉았다. 그러자 아마노사구메天探女가 이를 보고는 아메노와카히코에게 "이상한 새가 가지에 앉아있습니다"라고 알렸다. 아메노와카히코는 타카미무스히에게서 수여받은 아메노카고유미와 아메노하하야를 손에 쥐고는 꿩을 쏘아 죽였다.
그 화살은 꿩의 가슴을 뚫고는 타카미무스히가 계신 곳까지 달했다.
그러자 타카미무스히노 미코토는 이 화살을 보시곤 "이 화살은 틀림없이 예전에 내가 아메노와카히코에게 내린 화살이다. 그 화살에 피가 묻어있도다. 지상것과 싸워서 묻은 것일까"라고 말했다 그리곤 화살을 (지상으로) 되돌려 던졌다. 그 화살은 떨어져 아메노와카히코의 가슴에 명중하였다. 그는 니이나에를 하고는 누워서 쉬고 있는 새에 화살에 맞아 죽었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이 되돌아온 화살을 꺼리게 된 이유라고 한다.
아메노와카히코의 아내 시타테루히메가 울며 슬퍼하는 소리가 하늘까지 닿았다. 이 때에 우츠시쿠니타마는 그 곡을 듣고는 아메노와카히코가 죽은 것을 깨닫고, 질풍을 보내어 시체를 하늘로 올려보내었다. 곧바로 상옥을 짓고는 빈소로 하였다. 기러기는 죽은 자의 밥을 나르며 청소를 하는 자로 삼고(일서에서는 닭을 밥을 나르게 하고, 기러기를 청소하게 했다고 한다.), 참새를 절구 찧는 여자로 하였다.(일서에서는 기러기를 사자의 밥을 나르고, 청소를 하는 여자로 삼고, 물새를 상주로 하고, 참새를 절구 찧는 여자로, 뱁새를 곡하는 자로, 솔개를 염하는 자로 하고, 까마귀를 시신에게 밥을 먹이는 의식을 하는 자로 모든 새들에게 일을 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여덟 낮 여덟 밤을 곡을 하고 슬퍼하며 그를 기렸다.
이보다 이전에 아메노와카히코는 아시하라노나카츠쿠니에 있었을 때에 아지스키타카히코네노 카미味耜高彦根神와 친구였다. 고로 아지스키타카히코네가 하늘에 올라 조문하였는데, 이 신의 용모가 아메와카히코의 평생의 모습과 꼭 뺴닮았다. 아메노와카히코의 친척과 처자식들은 "아메노와카히코가 살아있는듯 하다"라고 생각하여, 옷자락을 매달려 기뻐하였다. 아지스키타카히코네는 크게 화를 내며 "나는 친구로서 도리를 지키고자 조문을 했다. 그런데, 더러움(케가레)汚穢을 꺼려야함에도 멀리서 와 슬퍼하며 그를 기리었다. 어째서 나를 망자와 착각하는가! 라고 말하며 그가 차고 있던 오오하가리大葉刈 다른 이름으로는 카무도노츠루기神戶劒를 빼어 빈소를 베어 무너트렸다. 빈소가 떨어져 지금의 미노노 쿠니美濃國의 아이미노카와 상류藍見川에 있는 모야마 산喪山이 되었다.
이 후 타카미무스히는 다시금 뭇 신들을 모아, 아시하라노나카츠쿠니에 보낼만한 신을 물었다. 모든 신들이 "이하사쿠네사쿠의 자식인 이하츠츠노오와 이하츠츠메가 낳은 아들 후츠누시經津主神. 이 자야 말로 마땅합니다."라고 진언하였다. 이 때에 아마노이와야(아메노이와토)天石窟에 사는 신 이츠노오하시리稜威雄走神[각주:1]의 아들 미카하야히甕速日神, 미카하야히의 아들인 히노하야히熯速日神, 히노하야히의 아들인 타케미카즈치武甕槌神[각주:2]가 있었다. 이 신이 (좌중에) 나와 말하길 "어째서 후츠누시만 대장부고 저는 대장부가 아니란 말입니까"라고 말하였다. 그 언사가 열심이었기에 후츠누시에 딸려 아시하라노나카츠쿠니를 평정토록 하였다.
두 신은 거기서에서 이즈모노쿠니出雲國의 이타사五十田狹 작은 해변에 내려왔다.
토츠카노 츠루기十拳剣를 빼어 땅에 거꾸로 꽂고는[각주:3] 그 칼 끝에 앉아 (거기에 온) 오오나무치에게 "타카미무스히의 황손이 강림하사 이 땅을 군림하고자 한다. 그런고로 먼저 우리 두 신들이 장해가 없도록 평정하기 위해 내려왔다.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그대는 장차 이 나라를 천신에게 바칠텐가 아니하겠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오오나무치는 "이는 내 아들에게 물어본 다음에 답하도록 하겠다."라고 하였다
이 때 그의 아들인 코토시로누시事代主神는 이즈모의 미호노 사키라고 하는 곳에서 물고기를 낚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혹은 새를 잡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고도 한다.
거기서 쿠마노노모로타후네熊野諸手船 다른이름으로는 아마노하토후네天鴿船에 사자인 이나세하기稻背脛를 태워 보냈다. 그리하여 타카미무스히의 칙령이 코토시로누시에게 전해져 그 대답을 물었다.
그러자 코토시로누시는 사자 이나세하기에게 "천신께서 물으시는 칙령은 기쁘게 삼가 받들어야 하며, 아버지께서 거역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 또한 거스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바다 한가운데에 야에아오후시카키八重蒼柴籬라고 하는 섭나무로 겹겹이 울타리를 만들고, 뱃전을 밟고 (그 곳으로) 피했다고 한다. 사자는 돌아와 그대로 보고하였다.
그러자 오오나무치는 아들의 말을 두 신에게 말하고 "내가 믿었던 아들이 피해버렸다. 고로 나도 피하도록 하겠다. 만일 내가 저항한다면 나라의 뭇 신들이 반드시 같이 저항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피한다면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는가?" 라고 말했다.
그는 나라를 평정할 때 사용한 히로호코廣矛을 두 신에게 건내주면서 "나는 이 창으로 공적을 이루었다. 천손이 이 창을 사용하여 나라를 다스린다고하면 반드시 평안하게 될 것이다. 나는 지금 모모타라즈야소쿠마데百不足之八十隅에 은거하도록 하겠다."라고 말하였다. 말을 다 하자 숨었다. 그리고 두 신은 복종하지 않는 귀신들을 죽이고(일서에서 말하길, 두 신은 마침내 악한(거역하는) 신들과 산천초목들을 죽이고 평정하였다. 그래도 불복한 자는 오직 별의 신인 카카세오香香背男 뿐이었다. 시토리가미倭文神[각주:4]인 타케하즈치建葉槌命[각주:5]를 보내었더니 마침내 복종하였다.) 그래서 두 신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었다.
이 때에 타카미무스히는 상을 덮는 이불인 마토코오후스마真床追衾로 황손 니니기를 덮어서 내려가게 하였다. 황손은 아메노 이와쿠라天盤座를 타고 떠났다. 겹겹이 구름들天八重雲을 헤치고 존엄한 위세로써 길을 찾아 히무카日向의 타카치호노미네高千穗峯 봉우리에 내려왔다. 그 후 황손이 나아가는 모양새는 나란히 봉우리가 있는 두 산에 (걸친) 아메노 우키하시天浮橋로부터 바다가 가까이 있는 평탄한 곳인 우사지마리타히라浮渚在平處를 걸쳐 불모지인 카라쿠니空國를, 히타오 땅頓丘을 지나 좋은 나라를 찾으러, 오타노쿠니吾田 나가야長屋의 카사사笠狹 해변에 이르렀. 그 땅에 한 사람이 있었으니 스스로를 코토카츠쿠니카츠나가사事勝國勝長狹라 불렀다. [각주:6]
천신이 후츠누시經津主神와 타케미카즈치武甕槌神를 아시하라노나카츠 쿠니에 보내 평정하도록 하였다. 두 신이 서로 말하길 "하늘에는 악한 신이 있다. 그의 이름은 아마츠미카보시天津甕星, 달리 아메노카카세오天香香背男라고 부르는 신이다. 먼저 이 신부터 죽인 다음에 아시하라노나카츠쿠니에 내려가자." 이때에 재주齋의 신을 이와이노우시齋之大人라고 한다. 이 신은 지금의 아즈마노쿠니東國의 카토리楫取[각주:7] 지방에 있다.
두 신은 이즈모出雲의 이타사五十田狹노 작은 해안가에 내려가서, (지상의) 오오나무치大己貴神에게 "그대는 장차 이 나라를 천신에게 바칠텐가 아니하겠는가"라 묻자 오오나무치가 되묻기를 "그대들 두 신이 말하는 바는 아무래도 믿기에 너무나 의심스럽다. (여기는) 내가 일찌기부터 와 있던 곳이 아닌가? 그러므로 당치도 않다."라고 하자 이에 는 돌아가 보고하였다.
그때에 타카키무스히가 두 신을 다시 내려보내어, 오오나무치에게 "그대가 말한 바는 이치에 맞도다. 그런고로 다시금 세세이 조항을條 세워 말하겠다.
그대가 다스리는 현세顯露之事는 황손이 다스릴 것이니 그대는 카미고토神事에 관한 일을 맡으라.
그대가 살 곳인 아마노히스미노 미야天日隅宮는 지금 짓고자 한다. 즉, 천 발千尋이나 되는 타쿠나와栲繩로써 모모아마리야소무스비百八十紐로 단단히 잡아멜 것이다.
또한 궁을 짓는 방식은 기둥은 높고 굵게 하며, 널은 넓고 두꺼운 것으로 하겠다. 또한, 논을 경작하여 주겠다. 또한, 그대가 바다에 왕래할 수 있도록 도구인 타카하시高橋와 우키하시浮橋를 비롯하여, 아마노토리후네天鳥船를 만들어 주도록 하겠다.
그리고 아마노야스카와 강天安河에 다리를 놓도록 하겠다.
또한 모모아마리야소누이百八十縫의 시라타테를 만들토록 하겠다.
그리고 그대를 제사지낼 신주로 아마노호히天穂日命를 정해주겠다."라고 하였다.
이에 오오나무치는 "천신의 칙령이 이토록 깊고 정중한 것을 알게되었다. 명에 따르지 않을 수 없구나. 내가 다스리던 것 중 현새는 황손이 다스려야 마땅하고, 나는 물러나 카미고토를 다스리겠다"라고 답하며, 후나토노카미岐神를 두 신에게 추천하길 "이 사람이 나를 대신하여 천신을 섬길 것이다." 나는 이곳을 떠나도록 하겠다."라고 말하고는 몸에 미즈노야사카니(신성한 야사카니 곡옥)瑞之八坂瓊을 몸에 두르고는 아주 가버렸다.
그러자 후츠누시는 후나토노 카미를 길잡이로 하여, 두루 (지상을) 돌아다니며 평정하였다. (천신의 통치를) 거스르는 자가 있으면 베어 죽이고 따르는 자에겐 상을 내렸다. 이 때에 따르는 (신들의) 우두머리는 오오모노누시大物主神와 코토시로누시事代主神였다. 그리고 오오모노누시와 코토시로누시는 야오요로즈를 아메노타케치天高市에 모아, 인솔하여 하늘에 올라 그 (신들의) 유순함을 내비쳤다.
이 때에 타카미무스히는 오오모노누시에게 "그대가 국진신을 처로 삼으면 나는 그대에게 섭섭하고 소원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 딸 미호츠히메三穗津姬를 그대의 아내로써 짝지어 주겠다. (앞으로) 여러신을 잘 데리고, 영원무궁토록 황손을 지키며 받들라."라고 칙을 내리고는 내려가도록 하였다.
시토리노 카미/시즈노 카미라고도 하는 아메노하즈치노 미코토는 직물의 신. 베짜기의 신 [본문으로]
직물의 신이 '거역하는 신'을 복종케 했다는 구절에서
1. 타케建가 타케武로 쓸 수 있고 하葉은 하刃로 쓸 수 있으니 무신이라는 설과
2. 직물에 별을 짜넣듯이 봉인 내지는 제사에 쓰이는 천을 만드는 신이니 제사를 지내어 복종케 했다는 설 두가지로 추측합니다. [본문으로]
이 본문 부분과 본 글에선 넘어간 딸린 일서에서 묘사는 삼국유사의 가락국기와 매우 유사합니다.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