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역사 관련2017. 6. 6. 22:19
흔히 비잔틴byzantine이라고 하는 비잔티움Byzantium 혹은 비잔티온Βυζάντιον은 코린토스Κόρινθος의 속령이었으나 독립한 메가라Μέγαρα의 사람들이 약 기원전 667년 경 설립한 식민도시를 유래로 합니다. 

대 플리니우스의 박물지Naturalis Historia에 따르면, 비잔티움의 뿌리가 되는 도시는 트뤼키아 인들이 세운 뤼고스Lygos라고 하는 도시였다고 하며, 전설에 따르면,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제우스와 이오의 딸 케로에사Κερόεσσα(뿔/보스포루스 해협의 금각만)를 어머니로 두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아버지로 하는 뷔자스가 도시를 세웠고, 그의 이름을 따와 그 식민도시 이름을 비잔티온이라 정했다고 합니다. 비잔티온은 흔히 페르시아 전쟁이라고 하는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아테네와 스파르타간의 나와바리 경쟁인 펠로폰네소스 전쟁 등의 전화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기원전 3세기 경 이탈리아 반도의 삼니움 족은 이탈리아 남부로 진출을 꾀하자 위협을 느낀 이탈리아 남부에 위치하던 그리스 식민도시들은 다른 식민도시들에 구원을 요청하고 로마인들에게도 그러한 구원을 요청하게 됩니다. 로마인들이 삼니움족들과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로마 공동체를 도운 공로로 비잔티온은 로마의 동맹시 자격을 가지게 되었고, 흑해로 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고, 아시아와 유럽(그리스)를 연결하는 곳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무역도시로 발전하게 됩니다. 

 비잔티온은 로마의 산하에 들어가면서 로마식 이름인 비잔티움Byzantium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비잔티움은 로마 제국의 제 17대 황제 콤모두스Commodus가 암살당하고 뒤를 이은 페르티낙스Pertinax조차 1년을 넘기지 못하고 근위대장에게 암살당했는데, 근위대장과 근위대 1만명의 지지를 받아 디디우스 율리아누스Didius Julianus가 19대 황제가 즉위했습니다.

 하지만, 판노니아 총독 셉티미우스 세베루스Septimius Severus, 시리아 총독 페르켄니우스 니게르Pescennius Niger, 브리타니아 총독 클로디우스 알비누스Clodius Albinus는 율리아누스의 제위에 반발하여 내전을 일으킵니다. 제위를 둔 싸움에서 니게르에 속했던 비잔티움은 세베루스의 군단에 포위되어 시민들간에 식인까지 자행되다가 결국 세베루스의 군단에게 약탈됩니다.

세베루스는 비잔티움의 중요도를 인식해 자기 아들 아우구스타 안토니나Augusta Antonina를 보내어 비잔티움을 복원했고, 이를 기념하여 아우구스타 안토니아라는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아버지이자 20대 황제인 세베루스 뒤를 이은 안토니나는 카라칼라Caracalla라는 별칭 유명해졌는데요. 카라칼라가 황제가 된 뒤 얼마지 않아 암살되면서 도시는 다시금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비잔티움은 나날이 번성해 콘스탄티누스 1세 때에는 새로운 수도로 지정되어 새로운 로마nova Roma/Νέα Ῥώμη라는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후 약 반세기가 지나서 새로운 로마는 콘스탄티누스를 기리며, 콘스탄티누스의 도시Constantinopolis/Κωνσταντινούπολις라 불리게 되었고 

1453년 5월 29일. 로마인들의 황제와 시민 그리고 군대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함락되었고 로마 일곱언덕에서 시작한 로마가 멸망하게 됩니다. 함락 후 1세기가 지난 1557년 사서이자 역사가였던 독일인 히에로니무스 볼프Hieronymus Wolf가 이 비잔티움을 수도로 하였던 로마인들의 제국 역사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한 비잔티움 역사집corpus historiae byzantinae을 출판합니다. 

이 책을 훗날 많은 역사가들이 로마인들의 제국 역사를 연구할 때 사용하게 되면서 비잔티움을 수도로 하였던 로마인들의 제국을 Byzantine Empire이라 불리는 풍토가 생기게 됩니다. 


Posted by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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