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역사 관련2015. 8. 15. 21:47

 70년전 오늘 정오에 일본 정부는 대동아 전쟁 종결 조서를 라디오를 통해 방송합니다. 이 문서는 포츠담 선언으로 공표된 연합군의 무조건 항복 요구를 수락하고 당시 최고통수권자인 히로히토의 항복선언이 담겨있는 문서로 라디오로 방송되었기 때문에 옥음방송玉音放送[각주:1]이라고도 합니다.


일제의 항복은 일찌기 논의되었지만, 히로시마-나카사키 원폭투하와 소련의 만주 침공으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고, 연합군측에서 무조건 항복과 천황제 폐지에서 무조건 항복이지만 천황제를 종전후에도 유지를 보장이라는 형식으로 일제의 요구를 부분수용하자 일제는 항복을 하기로 합니다.


 정식 항복문서는 1945년 9월 2일 미주리 함USS Missouri, BB-63에서 조인식을 가졌습니다. 흔히, 인간선언을 1945년 8월 15일에 했던 것으로 오해하는데, 인간선언은 다음해인 1946년 1월1일에 방송되었습니다.


다음은 대동아 전쟁 종결 조서 원문입니다.

 짐은 깊게 생각하건데,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써 시국을 수습하고자 하여, 이에 충성스럽고 선량한 그대 백성들에게 고한다


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미·영·중·소 4국에 대해 그 공동선언을 수락하는 뜻을 통고하도록 하였다


무릇, 제국신민의 안녕을 꾀하고, 만방공영의 즐거움을 함께 하는 것은, 황실 조상께서 남긴 범규로써 짐이 삼가 제쳐두지 아니하였다. 일찌기 미·영 두나라에 선전포고한 까닭도, 또한, 실로 제국의 자존과 동아시아의 안정을 간절히 바라는 것에서 나왔으며, 타국의 주권을 배격하고 영토를 침범하는 것과 같은 것은 본디 짐의 뜻이 아니었다

 

그런데 교전한지 4년이 지나, 짐의 육해군 장병들의 용전과 짐의 문무백관들의 근면함과 짐의 일억 민초들의 봉공을 각각 최선을 다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의 국면을 반드시 호전시키지 못하였고, 세계의 대세 또한 우리에게 이롭지 아니하였고, 적은 새로이 잔학한 폭탄[각주:2]을 사용하여 끊임없이 무고한 살상과 참상을 거듭하는 바, 참으로 예측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었다


게다가 교전을 계속 한다면,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뿐더러, 나아가서는 인류의 문명마저 파괴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짐은 무엇으로 억,조가 되는 어린 백성들을 보존하고 황실 조상들의 신령에게 사죄할 수 있겠는가? 짐이 제국정부로 하여금 공동선언에 응하도록 한 것도 이러한 연유다


짐은 제국과 함께 시종 동아시아의 해방에 협력한 뭇 맹방에 대한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신민으로서 전선에서 죽고, 일하던 곳에서 순직하고, 비명횡사한 자들과 더불어 유족을 생각하면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듯 하다. 전상을 입고, 재화를 입어 가업을 잃은 자의 생계에 이르러선 짐도 깊게 마음에 두는 바이다


생각컨데 이후 제국이 받아야할 고난은 심상치 않으며, 그대 신민들의 충정도 짐이 잘 알고있지만, 짐은 시운을 따르는 것을 참기 어렵다는 것을 감추기 어렵고, 어려움을 견디어 만세를 위하여 태평을 열고자 한다


짐은 이에 국체를 지킬 수 있는 충량한 그대 신민들의 일편단심을 신뢰하며, 늘 그대 신민들과 함께 있다. 만약 그 정이 격해지는 바, 함부로 사단을 일으키거나, 혹은 동포를 서로 배척하여 시국을 어지럽힘으로써 대도를 그르치고, 세계에 신의를 잃는것이 짐이 가장 경계하는 바이다


모름지기 온 나라 한 집안의 자손들은 서로 전하여, 굳건히 신주불멸[각주:3]을 믿으며, 책임이 무겁고, 가야할 길은 먼 것을 유념하여, 장래의 건설에 총력을 다하여 기울이고, 도의를 두텁게 하여 지조를 굳히고 맹세코 국체의 정화를 발양하고 세계의 진운에 뒤쳐지지 않도록 하여라


그대 신민들은 이러한 짐의 뜻을 마음에 두고 지켜라


쇼와 20년 8월 14일(1945년 8월 14일)


내각총리대신内閣総理大臣 남작男爵 스즈키 칸타로우鈴木貫太郎[각주:4] 

해군대신海軍大臣 요나이 미츠마사米内光政

사법대신司法大臣 마츠자카 히로마사松阪広政

육군대신陸軍大臣 아나미 코레치카阿南惟幾[각주:5]

군수대신軍需大臣 토요타 테이지로우豊田貞次郎

후생대신厚生大臣[각주:6] 오카타 타다히코岡田忠彦

국무대신國務大臣 사카이 효우고로우桜井兵五郎

국무대신國務大臣 사콘지 세이조우左近司政三[각주:7]

국무대신國務大臣 시모무라 히로시下村宏[각주:8]

대장대신大藏大臣[각주:9] 히로세 토요사쿠広瀬豊作

문부대신文部大臣[각주:10] 오오타 코우조우太田耕造[각주:11]

농상대신農商大臣[각주:12] 이시쿠로 타다아츠石黒忠篤

내무대신内務大臣[각주:13] 아베 겐키安倍源基[각주:14]

외무대신外務大臣 겸 대동아대신大東亞大臣 토우고우 시게노리東郷茂徳[각주:15]

국무대신國務大臣 야스이 토우지安井藤治

운수대신運輸大臣[각주:16] 코비야마 나오토小日山直登




朕深ク世界ノ大勢ト帝國ノ現状トニ鑑ミ非常ノ措置ヲ以テ時局ヲ收拾セムト欲シ茲ニ忠良ナル爾臣民ニ告ク 


朕ハ帝國政府ヲシテ米英支蘇四國ニ對シ其ノ共同宣言ヲ受諾スル旨通告セシメタリ 


抑々帝國臣民ノ康寧ヲ圖リ萬邦共榮ノ樂ヲ偕ニスルハ皇祖皇宗ノ遣範ニシテ朕ノ拳々措カサル所曩ニ米英二國ニ宣戰セル所以モ亦實ニ帝國ノ自存ト東亞ノ安定トヲ庶幾スルニ出テ他國ノ主權ヲ排シ領土ヲ侵スカ如キハ固ヨリ朕カ志ニアラス 


然ルニ交戰已ニ四歳ヲ閲シ朕カ陸海將兵ノ勇戰朕カ百僚有司ノ勵精朕カ一億衆庶ノ奉公各々最善ヲ盡セルニ拘ラス戰局必スシモ好轉セス世界ノ大勢亦我ニ利アラス加之敵ハ新ニ殘虐ナル爆彈ヲ使用シテ頻リニ無辜ヲ殺傷シ慘害ノ及フ所眞ニ測ルヘカラサルニ至ル 


而モ尚交戰ヲ繼續セムカ終ニ我カ民族ノ滅亡ヲ招來スルノミナラス延テ人類ノ文明ヲモ破却スヘシ斯ノ如クムハ朕何ヲ以テカ億兆ノ赤子ヲ保シ皇祖皇宗ノ神靈ニ謝セムヤ是レ朕カ帝國政府ヲシテ共同宣言ニ應セシムルニ至レル所以ナリ 


朕ハ帝國ト共ニ終始東亞ノ解放ニ協力セル諸盟邦ニ對シ遺憾ノ意ヲ表セサルヲ得ス帝國臣民ニシテ戰陣ニ死シ職域ニ殉シ非命ニ斃レタル者及其ノ遺族ニ想ヲ致セハ五内爲ニ裂ク且戰傷ヲ負ヒ災禍ヲ蒙リ家業ヲ失ヒタル者ノ厚生ニ至リテハ朕ノ深ク軫念スル所ナリ 


惟フニ今後帝國ノ受クヘキ困難ハ固ヨリ尋常ニアラス爾臣民ノ衷情モ朕善ク之ヲ知ル然レトモ朕ハ時運ノ趨ク所耐ヘ難キヲ耐ヘ忍ヒ難キヲ忍ヒ以テ萬世ノ爲ニ太平ヲ開カムト欲ス


朕ハ茲ニ國體ヲ護持シ得テ忠良ナル爾臣民ノ赤誠ニ信倚シ常ニ爾臣民ト共ニ在リ若シ夫レ情ノ激スル所濫ニ事端ヲ滋クシ或ハ同胞排擠互ニ時局ヲ亂リ爲ニ大道ヲ誤リ信義ヲ世界ニ失フカ如キハ朕最モ之ヲ戒ム 


宜シク擧國一家子孫相傳ヘ確ク神州ノ不滅ヲ信シ任重クシテ道遠キヲ念ヒ總力ヲ將來ノ建設ニ傾ケ道義ヲ篤クシ志操ヲ鞏クシ誓テ國體ノ精華ヲ發揚シ世界ノ進運ニ後レサラムコトヲ期スヘシ 


爾臣民其レ克く朕カ意ヲ體セヨ 


昭和二十年八月十四日


内閣総理大臣 男爵 鈴木貫太郎 

海軍大臣 米内光政 

司法大臣 松阪広政 

陸軍大臣 阿南惟幾 

軍需大臣 豊田貞次郎 

厚生大臣 岡田忠彦 

國務大臣 桜井兵五郎 

國務大臣 左近司政三 

國務大臣 下村宏 

大藏大臣 広瀬豊作 

文部大臣 太田耕造 

農商大臣 石黒忠篤 

内務大臣 安倍源基 

外務大臣兼 大東亞大臣 東郷茂徳 

國務大臣 安井藤治 

運輸大臣 小日山直登






[각주:17]






2013/12/06 - [ /역사, 종교, 전설 등] - 일제의 치안유지법 治安維持法


2014/02/04 - [ /역사, 종교, 전설 등] - 바다에 가면 海行かば


2014/08/06 - [ /역사, 종교, 전설 등] - 일본 배이름 어미에 붙는 마루丸와 일제시대 해군 전함 이름의 유래


2015/08/15 - [ /역사, 종교, 전설 등] - 2015년 8월 14일 아베 내각 총리대신 기자회견 담화 전문


2016/08/08 - [ /유래 역사 관련] - 2016년 8월8일 천황 아키히토의 일본대국민 영상메세지 상징으로서의 책무에 관해


2016/03/16 - [ /유래 역사 관련] - 제국 대미 통첩帝国の対米通牒과 미국 및 영국에 대한 선전 조서米國及英國ニ對スル宣戰ノ詔書


2015/08/19 - [ /유래 역사 관련] - 일본 황실전범 皇室典範


2015/08/17 - [ /유래 역사 관련] - 경술국치 庚戌國恥


2015/08/17 - [ /유래 역사 관련] - 조선총독부 설치에 관한 건, 조선총독부 관제



  1. 교쿠온호우소우ギョクオンホウソウ 이후 일본어 발음은 실제 발음이 아닌 표기 우선으로 음역. [본문으로]
  2.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와 도쿄 소이탄 투하를 말함. [본문으로]
  3. 일본은 신神이 다스리는 나라州니 결코 멸망하지 않는다不滅는 일제의 주장 [본문으로]
  4. 1945년 4월 7일부터 8월 17일까지 지속된 스즈키 칸타로우 내각鈴木貫太郎内閣 [본문으로]
  5. 항복이 아닌 계속 전쟁을 주장하다 항복선언 당일 자살 [본문으로]
  6. 복지 [본문으로]
  7.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도록 다른 관료들을 설득 [본문으로]
  8. 당시 내각정보국 총재. 포츠담선언 수락하도록 종용 [본문으로]
  9. 재무,재정 금융담당 [본문으로]
  10. 교육 문화 담당 [본문으로]
  11. 아세아 대학 창립자 중 한명 [본문으로]
  12. 농·임·수산업 [본문으로]
  13. 국가신토, 위생, 토목 경찰, 지방행정을 담당 [본문으로]
  14. 별명이 빨갱이 사냥꾼아베赤狩り安倍. A급 전범. 포츠담 선언을 수락해 항복하는걸 반대 [본문으로]
  15. 도공의 후예로 한국식 이름은 박무덕朴茂德. 메이지유신 이후 혈통에 대해 차별이 가해지자 호적을 구입해 성을 바꿈. [본문으로]
  16. 운수통신대신運輸通信大臣 본래는 해륙수송체제를 담당하는 조직으로 항만,창고,기상,우편,통신 등 온갖 부서를 통합한 초거대 부서였으나 45년 5월 개편되어 철도,기상,해상보안 등을 담당 [본문으로]
  17. https://ja.wikisource.org/wiki/%E5%A4%A7%E6%9D%B1%E4%BA%9E%E6%88%B0%E7%88%AD%E7%B5%82%E7%B5%90%E3%83%8E%E8%A9%94%E6%9B%B8 [본문으로]
Posted by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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