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종교 관련2015. 7. 11. 05:43

오비디우스Ovidius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에 따르면, 트로이 왕족 안키세스와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난 아이네아스Αἰνείας는 트로이 전쟁에서 헥토르를 도와 공을 세우지만, 결국 트로이는 멸망하고 유민들을 이끌어[각주:1] 모험을 하다가 이탈리아로 가, 나라를 세우는데요. 시뷜라/시빌라σίβυλλα는 이때에 등장합니다.



[각주:2]

 그[각주:3]는 이곳들을 뒤로하고 오른쪽으로는 파르테노페Parthenopeia[각주:4]

성벽 옆을, 왼쪽으로는 나팔수인, 아이올루스Αιολος[각주:5]의 아들의 무덤과

갈대가 무성한 늪지대 옆을 지나 쿠마이Cumae[각주:6]의 해안에

도착한 다음 장수하는 시뷜라σίβυλλα[각주:7]의 동굴로 들어가서는 

아베르나[각주:8]를 지나 아버지의 망령을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105

간청했다. 시뷜라는 한참 동안 땅바닥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가

마침내 신에 씌여, 눈을 들더니 말했다.

'그대는 큰 것을 요구하는구려, 그 손은 칼에 의해,

그 경건함은 불에 의해 검증된 위대한 행적의 영웅이여.

하지만 두려워 마시오 트로이야인의여! 그대는 소원을 이루어 110

내 인도 아래 엘뤼시움[각주:9]의 거처들과, 우주의 마지막 왕국[각주:10]과,

아버지의 소중한 환영을 보게 될 것이오.

미덕이 갈 수 없는 길은 없다오." 그러더니 그녀는

아베르나의 유노[각주:11]의 숲에서 황금으로 빛나는 가지를

가리키며 그것을 줄기에서 꺽으라고 명령했다 115

아이네아스는 시키는 대로 하여 무시무시한 오르쿠스[각주:12]

부富와 자신의 선조들과 고매한 앙키세스의 연로한 그림자를

보았다. 그는 또 그곳의 법과, 새로운 전쟁에서

자신이 어떤 위험을 겪어야 하는지도 배웠다.

그곳으로부터 지친 발걸음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그는 120

쿠마이의 안내자[각주:13]와 대화를 하면서 노고를 덜었다.

그는 어둧미침한 어스름을 지나 무시무시한 길을 걸으며 말했다.

"그대가 여신으로서 내 곁에 있든 아니면 신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소녀이든 간에, 나는 그대를 언제나 신성으로 여길 것이며,

내 모든 것이 그대 덕분이라고 고백할 것이오. 그대의 뜻에 따라 125

나는 죽음의 세계에 다가가 그것을 보고 나서 그 세계에서 무사히

벗어났기 때문이오. 그 대가로 나는 지상의 대기로 돌아가게 되면

그대를 위해 신전을 세우고, 그대의 명예를 위해 분향할 것이오."

 그러자 예언녀가 그를 돌아다보더니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는 여신이 아니며, 인간의 머리는 그 누구도 분향의 명예를 130

받을 자격이 없어요. 그대가 몰라서 실수하는 일이 없게 하려고

하는 말이지만, 나는 끝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는 제의를 

받았어요. 만약 내 처녀성이 포이부스[각주:14]의 사랑을 받아들인다면 말예요.

그분은 그것을 바라며 선물로 미리 나를 매수하고 싶어 말했어요.

'쿠마이의 소녀여, 그대가 원하는 것을 고르도록 하라! 135

그러면 그대는 원하는 것을 갖게 되리라.' 나는 한줌의

먼지 무더기를 가리키며 어리석게도 그 먼지 알갱이 수만큼

많은 생일을 갖고 싶다고 했어요. 허나 그 세월이 줄곧

청춘이어야 한다는 요구를 깜빡했어요. 하지만 그 분은

그 세월뿐만 아니라 영원한 청춘도 주시려고 했어요, 내가 그분의 140

사랑을 감수하기만 한다면 말이에요. 허나 나는 포이부스의 선물을

무시하고 여태 미혼으로 남아 있어요. 어느새 행복한 시절은 내게

등을 돌리고 벼약한 노령이 떨리는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그것을 나는 오랫동안 참고 견뎌야 해요. 나는 벌써 일곱 세기를 

보냈지만, 내 나이가 먼지 알갱이 수와 같아지려면 아직도 145

삼백 번의 수확기와 삼백 번의 포도 수확을 더 보아야 해요.

긴긴 세월이 내 이 몸을 왜소하게 만들고 노령에 시든

내 사지가 최소의 무게로 오그라들 때가 오겠지요.

그러면 나는 사랑받았던 여자로 보이지도 않을 것이고,

신의 마음에 들었떤 여자로도 보이지 않겠지요. 포이부스 자신도 150

아마 나를 몰라보시거나 나를 사랑한 적이 없으시다고 하시겠지요.

나는 그만큼 변해 눈에 보이지도 않게 되겠지만, 운명이 내게 목소리를

남겨놓아 그 목소리로 사람들은 나를 알아보게 될 거예요."



 


P. OVIDIVS NASO - METAMORPHOSES Liber XIV



 시뷜라는 예언으로 용한 아폴론의 무녀 중에서도 유독 총애를 받았던 무녀의 이름으로 하는 점에서 신이 내려(혹은 트랜스 상태에 빠져) 예언을 하는 무녀[각주:15]로 뜻이 늘어납니다. 쉬빌라는 그리스-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에게 '영원'을 수여받은 인물중 가장 최근에 등장하는 인물인지라 로마인들에게는 꽤나 흥미로웠나 봅니다. 소설 '쿠오 바디스'의 진짜 모델이라고도 하는 가이우스 페트로니우스 아르비테르Gaius Petronius Arbiter는 자신의 산문 풍자소설인 사티리콘Satyricon에 '죽지않는다'라는 점에서 따와 시뷜라를 등장시킵니다.

 소년들이 "시뷜라. 소원이 뭐야?"라고 묻자

시빌라가 답했다 "죽고 싶어."


 pueri dicerent: "Sibilla, ti thelis?", respondebat illa: "apothanin thelo".


Satiricon Liber XLVIII



  또한, 예언의 신이기도 한 아폴론의 총애를 받았다는 점을 주목하여 시뷜라를 속된 말로 끗발이 쌘 무녀로 생각해 그녀가 미래의 일을 책으로 적어 남겼고, 이 예언서를 로마 유피테르 신전에 잘 모셔두었다고 여겼습니다. 이 예언서를 시빌라의 서Libri Sibyllini라고 하는데, 광화정이 들어서기 바로 직전인 왕정 로마의 마지막 왕인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스페르부스가 무녀 시뷜라에게서 사서 로마 카피톨리움Capitolium 언덕에 있는 가장 훌륭하시면서 선하신 제우스 신전Iuppite Optimus Maximus[각주:16]에 보관했다고 합니다. 시빌라의 서는 나라의 중대사가 있을때 원로원이 열어봐 문제를 해결했는데, 로마 대화재 떄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에서 시작된 크리스트 교가 로마 제국의 유일한 종교가 된 이후, 크리스트 교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시빌라의 예언Oracula Sibyllina이라는 가짜 예언서를 만들집니다. 시빌라의 예언은 '그 고명한 예언자 시빌라가 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재림을 예언했었다!'는 꽤나 충격적인 주장과 함께 등장하였는데, 시빌라의 예언은 사실 초기 교회의 신학만이 담겨진 것이 아니라 유태교와 마구 뒤섞인 형태입니다. 또 '발견'될 때 마다 그 내용이 조금씩 없어지거나 불어났죠. 이 시빌라의 예언이 "그게 정말 믿을만한거야?"라는 지적도 나왔지만, 시빌라의 예언은 오랜 세월동안 '진짜 시빌라의 예언'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시뷜라를 인정하는 분위기를 엿볼 수 있는 것으로 위령미사곡Missa pro defunctis. 통칭 레퀴엠Requiem 중 진노의 날Dies irae과 시스티나 성당에 그려진 벽화가 있습니다. 


 진노의 날은 위령미사곡 중 입당송-자비송Κύριε Ελέησον 그리고 바로 연주되는 곡으로 기독교에서 세계가 멸망하고 모든 영혼이 죄의 심판을 받는 '진노의 날Dies irae'에 대한 내용을 담았는데요. 이 노래에 시뷜라가 등장합니다!


진노의 날, 바로 그 날, 

온 천지가 잿더미 되는 그 날,

다윗과 시빌라가 예언한 날.


얼마나 두려울 것인가!

심판자가 당도하실 그 때, 

온갖 행실을 엄중히 저울질하리.


Dies iræ, dies illa,

solvet sæclum in favilla, 

Teste David cum Sibylla. 


Quantus tremor est futurus,

quando judex est venturus,

cuncta stricte discussurus.



 또한 시스티나 성당Sacellum Sixtinum에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가 그린, 본 글의 주인공인 쿠마이의 시뷜라를 비롯해 다양한 지역의 시뷜라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각주:17]

오래 살았다는 것에서 따왔는지 미인으로 그려진 다른 시빌라들과 달리, 쿠마이의 시빌라는 성인 남성으로 착각될 정도로 험상궃게 생긴 할머니의 모습으로 그려져있습니다.



2015/06/11 - [역사, 종교, 전설 등] - 피그말리온 Pygmalion Πυγμαλίων


2015/06/25 - [역사, 종교, 전설 등] - 목성 라그랑주 점인 트로이 소행성군 The Jupiter Trojans Trojan Asteroids


2015/07/02 - [역사, 종교, 전설 등] -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언급되는 늑대인간


2015/03/08 - [역사, 종교, 전설 등] -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 언급되는 피닉스Φοινιξ


  1. 고고학적으론 '트로이 전쟁' 시기 이후로 도시가 복구된 흔적이 있다고 하며, 일부 전승에선 멸망한 트로이를 재건했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2. 이하의 번역은 천병희 님이 번역한 변신 이야기에서 [본문으로]
  3. 아이네아스Αἰνείας [본문으로]
  4. 세계 삼대 미경을 자랑하는 나폴리Napoli [본문으로]
  5. 바람의 신. 바람이 담긴 주머니를 풀고 여미는 것으로 바람을 조절한다고 함. [본문으로]
  6. 나폴리 서쪽에 있던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스의 식민지 [본문으로]
  7. 신이 씌여져 예언을 하는 무녀. 일반적으론 쿠마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의 아폴론의 총애를 받아 오래 살게된 무녀를 말함. [본문으로]
  8. 이탈리아 서남부 캄파니아 지방에 있는 호수로, 고대 그리스-로마에서는 이 호수에 저승으로 내려가는 입구가 숨겨져있다고 믿어, 저승을 뜻하는 말로 사용함 [본문으로]
  9. 그리스어론 엘뤼시온Ηλυσιον. 목가적인 낙원으로 이상향. [본문으로]
  10. 저승 [본문으로]
  11. 페르세포네Περσεφονη의 별칭 [본문으로]
  12. Orcus. 이탈리아 에트리아 지방의 죽음의 신이 그리스 신화의 하데스Ἁδης/하이데스Ἁιδης와 융합되어 하데스의 별칭으로 자리잡음. [본문으로]
  13. 시뷜라 [본문으로]
  14. 그 포이보스Φοῖβος. 빛나는 자 라는 뜻으로 아폴론Απολλων의 별칭 [본문으로]
  15. 쿠마이 이외로 거론되는 시빌라는 페르시아, 리비아, 델포이, 시메리아, 에리트리아, 사모스, 헬레스폰토스, 프리기아, 티볼리 [본문으로]
  16. 베네딕틴 라벨에 적힌 D.O.M은 Deo Optimo Maximo. 최고로 훌륭하시고 선한 신께(바친다)라는 뜻의 단어로 이 신전에서 유래한 말. [본문으로]
  17.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umaean_Sibyl#/media/File:CumaeanSibylByMichelangelo.jpg [본문으로]
Posted by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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