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의 모티브는 포송령蒲松齡이라는 사람이 청나라 초기에 간행한 1766년에 간행 단편 소설집인 요재지이聊齋志異 제 7권에 수록된 269번째 이야기 청아靑娥입니다.


이야기 청아靑娥는 한 마을에 도교에 뜻을 두었던 아버지 밑에 자라 하선고何仙姑[각주:1]를 동경하는 미인 청아와 총명한 곽환霍桓이 등장인물이며 주인공은 청아라기보다는 곽환에 가깝습니다.


 곽환은 진나라 땅[각주:2] 사람으로 현위縣尉[각주:3]인 아버지를 두었지만 딱하게도 일찍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곽환이 사는 마을에는 평사評事[각주:4]를 지내는 무 씨武氏가 있었는데, 무씨는 도교에 심취해 벼슬과 가족을 내버리고 산에 은거했다고 합니다.(이하 곽환 → 곽생이라 표기.)


 이 무씨에겐 청아靑娥라고 매우 아름다운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도교 서적을 몰래 읽고 하선고를 동경하게 되었습니다. 혼기가 차감에 따라 여기저기서 혼담이 오고가지만 청아는 무슨 뜻을 지녔는지 혼담을 매양 거절했습니다.


곽생이 11살 청아가 14살이던 어느 날. 곽생이 문가에 서있다가 청아를 보게 됩니다. 첫눈에 반한 곽생은 어머이를 통해 무씨네 청아라는 아가씨와 혼인하고 싶다고 뜻을 내비쳤지만, 무씨네에서는 묵묵부답으로 조용히 거절하였습니다.


이러한 곽생에게 하늘이 기회를 내리었는데 어느 날 한 1 척尺[각주:5] 되는 가래鑱[각주:6]를 가진 누군가 찾아와 곽생에게 내보였습니다. 아무개가 이 가래로 벽을 찍자 벽이 썩은 흙덩이처럼 말끔히 구멍이 뚫리지 않겠습니까?

곽생이 매우 놀라며 구경하자 아무개는 그것을 그냥 주고는 어디론가 가버렸습니다. 곽생이 몇번 담장에 실험해보고는 이 가래로 청아네 들어가 일을 저질러 버리기로 합니다.

곽생은 이 가래로 무씨네로 들어가 청아의 방에 잠입하지만 혼외정사는 커녕 깜빡 잠이 들고맙니다. 해가 뜨자 먼저 눈을 뜬 청아와 시종들에게 집단 린치를 당해야하지만, 청아는 곽생에게 봉채鳳釵[각주:7]를 들려보냅니다.

이러한 일이 있음에도 불구하고(아니면 이러한 일이 있었기 때문인지) 재차 혼인 상담을 보내지만, 무씨네에서 면박을 당한 중매쟁이가 곽생의 어머니에게 욕지꺼리를 하며 진실을 알리고 무씨와 곽씨 집안은 소문이 퍼지지 않게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그렇게 알음알음 곽생과 청아의 혼인 기회는 봄날 아지랑이 처럼 되는것 같았습니다.

 구공歐公이라는 사람이 곽생과 청아네 마을에 부임을 오게되었습니다. 마침 곽생의 글귀를 보고 곽생을 은근히 마음에 들었던 구공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혹 혼인은 아직이냐 물었습니다. 곽생이 이러저러한 일로 무 평사와 약조가 좋지 않게 되었다.라고 말하자

한태조가 신릉군을 좋아하듯 구공은 사람과 재물을 보내 곽생과 청아를 혼례를 시켜주었습니다. 곽생과 청아는 맹선孟仙이라는 아들도 얻었습니다. 하지만 청아는 애를 유모에게만 맡기고 좀처럼 제 새끼를 챙기지 아니했습니다.

4년에서 5년쯤 지났을까 청아는 곱게 몸을 치장하고 지아비와 시어미 앞에 " 연을 맺은지 오래 되었지만, 만남은 짧디 짧고 이별은 길지 않습니까?"라며 지아비와 시어미에게 이별의 례를 행하곤 방으로 들어갑니다.

갑작스레 쥐약을 쳐먹은 것처럼 기이한 행동거지를 하는 청아가 걱정되, 뒤따라간 곽생에게는 그저 침상에 잠들듯 숨을 거둔 청아만 보일 뿐이었습니다. 좋은 관을 사 성대히 장례를 치뤄주었지만 곽씨네 찾아온 불행은 이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고부사이가 나쁘지 않았던 시어미는 그만 혼절하고는 하루하루 쇄약해졌습니다. 생선이 먹고 싶구나라며 제정신이 아닌채 중얼거리는 어머니를 위해 곽생은 십리 백리를 걷고 또 걸어 큼지막한 생선을 얻어 집에 오는데 그만 발에 큰 물집이 나 도저히 똑바루 걷지못하고 발을 질질 끄는 모양새가 되어 큰 산을 넘게 됩니다.

제몸보단 어머니 몸이 더 걱정되어 보는 사람이 안쓰러울정도로 다리를 절룩거리며 걷는 그 앞에 왠 노인이 나타나 약을 발라주고는 "마땅한 처자가 없으면 이 산 마을에 오시구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만, 어머니가 맘에 걸리는 곽생은 "정말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는 약이 발려서 그럭저럭 걸을수 있는 발로 낼름 집으로 향했습니다.

어머니도 곽생이 구한 생선으로 기운을 어느정도 되찾고, 곽생도 나름 마음의 공허함이 덜해졌을 무렵, 산에서 만나 노인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자 그 산을 되찾아 갑니다.

한참을 찾아도 마을은 커녕 사람 사는 모양새가 안나는 산을 헤메이다가 그만 절벽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치고 맙니다. 그리 높은데서 떨어진것이 아니라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날도 저물고 이 다리로 산을 걷는건 위험해 어디 하룻밤만 몸을 피할 곳이 없나 찾다가 꽤나 큰 동굴을 찾아들어가게 됩니다.

한 3리쯤 4리쯤 들어갔을까 어두컴컴해야 마땅할 동굴이 해가 뜬것처럼 훤해지면서 나름 훌륭한 저택이 있지 않겠습니까? 사정을 말하고 하룻밤 묵어가야겠다라고 생각한 곽생이 저택에 들어가려는데, 미인이 그곳서 나오지 않겠습니까? 

자세히보니 지난날 죽은 아내 청아지 않겠습니까? 서러움일지 슬픔인지 가슴속에서 올라온 감정을 품에 안고, 눈물을 흘리며 청아에게 지난날일을 설명하며 이곳은 저승이냐고 물었습니다. 청아는 새벽녘 꽃이 피듯 환하게 웃으며 낭군께서도 신선이 되실수 있다며 집안으로 안내했습니다.

그 집안에는 산으로 은거했다는 무평사와 시종년이 있었습니다. 상다리 휘어질 정도로 극진한 대접을 받고 슬슬 자려고 각자 잠자리로 들어가는데 곽생은 청아 이부자리로 같이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청아는 이곳이 어딘데 외설스러운 짓을 하시려 합니까?라며 거절하지만

곽생은 억지로라도 동침을 하려하자 무평사는 곽생을 억지로 끌어내 쫓아내려 하자, 곽생은 어찌 사위를 이따위로 대접하는가 역정을 내면서 청아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무평사와 청아는 둘이서 무어라 이야기를 하곤 청아는 잠시 준비를 한다며 먼저 나가있으라 했습니다. 곽생이 문을 나서자마자 바위가 돋아나듯 문앞이 바위로 종이 한장 들어가지 못하게 막혀버리지 않겠습니까? 믿었던 아내와 장인에게 뒷통수를 크게 후려맞은 곽생은 눈에 쌍심지를 품고

욕지꺼리를 마구 퍼부으며 옛 무씨네 숨어들었을때 쓴 가래로 그 문을 파고 또 팠습니다. 얼마나 팠을까 바위가 슬쩍 열리더니 청아가 떠밀려 나왔습니다. 그리고 바위는 다시 종이 한장 들어가지 않게 막혀버렸습니다.

청아는 어느 도사가 당신에게 그딴 것을 주어 우리를 죽게 한답니까?라며 곽생을 원망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청아는 가지 두개를 꺽어 말로 변화 시켜 곽생과 같이 시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곽생네 마을에는 대나무 지팡이를 시체인 척 두고 사라진 여자가 있다라는 소문이 퍼졌다고합니다. 다시 재결합한 청아와 곽생은 다른 군으로 이사가 딸아이를 낳고 18년을 그 마을에서 더 살다가, 그해 돌아가신 시어미니의 제사를 극진히 지내고 딸아이를 시집 보내어 더이상 부족함이 없을때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맹선은 이런 부모를 찾으려했지만 온데간데가 없어 30년을 보냈습니다. 그에게는 글재주가 있지만 시험장에만 들어가기만 하면 운이 따르지 않아 나이 40이 되도록 급제를 하지 못했는데, 향시를 보러 가는데 같은 방에 18살 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용모도 빼어나고 마음에 들어했던 차에 그 아이의 답안지를 훔쳐보는데 곽중선霍仲仙이라

서로 성도 곽霍으로 같고 이름에 선仙이 들어가는 보통인연이 아니라, 중선은 시험을 보러 집을 떠날때 "서울에서 만약 산서성 출신 곽 씨를 만나면 우리 일족이니 친하게 지내라"라는 주의를 주었다 말하자 짚이는게 있는 맹선이 중선의 가족의 이름을 묻다가 부모님의 이름이 같음을 알게 됩니다.

맹선과 중선 형제는 시험이 끝나고 마차를 타고 고향에 내려갔지만, 곽생과 청아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있었다고 합니다. 맹선,중선 형제는 고향 땅으로 돌아가 조상의 산소를 돌보며 전국에서 부모를 찾으려 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작가 포송령蒲松齡은 


담장을 뚫고 들어가 아가씨 침대에서 잠을 잤다니, 이는 치정에 눈이 먼 행위렷다. 게다가 절벽을 깍아 장인을 혼냈으니, 이 얼마나 미친 짓거리인가? 선인이 그들을 부부로 맺어준 이유는 단지 곽생의 효심을 불로장생으로 보답하심이었다. 하지만 인간 세상에 섞여들어 부부 생활을 하고 아들딸ㅇ르 낳으며 죽을 때까지 살았다 한들 또 안 될 바가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삼십 년을 살면서 자기 자식을 두 번이나 버린 것은 또 무슨 연고에서였을까? 기이하고 또 기이할 뿐이다! 

라 평하였습니다.



  1. 팔선八仙 중 유일한 여성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당나라 사람이라고 합니다. [본문으로]
  2. 지금의 산시 성山西省 지방을 가르킵니다. [본문으로]
  3. 현縣의 치안을 담당하던 벼슬 [본문으로]
  4. 감찰과 형옥刑獄을 담당하는 벼슬 [본문으로]
  5. 약 30센티 정도 [본문으로]
  6. 판본에 따라 가래鍬가 아니라 쟁기鑱나 괭이斸등 다양하지만 농기구를 가르킴. [본문으로]
  7. 봉황 머리를 새기거나 봉황 장식이 달린 큼지막한 비녀. 봉잠鳳簪이라고도 합니다. [본문으로]
Posted by 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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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솔직히 말해서 청아전. 아들 두 명만 불쌍했습니다.....

    2012.08.09 02:13 [ ADDR : EDIT/ DEL : REPLY ]